언론속의 국민
최연소 작가로 국제무대 주목… “덜 핀 꽃에 서리가 내렸다” 겸손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 김한들(행정대학원)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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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미술계의 아이돌’ 문성식 / 80년생으로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참가 / 이후로 두산·국제갤러리 등 국내서 활약 / 아르코미술관·프라하비엔날레도 참여 / 그 후 5년 주기로 개인전 열며 속도 조절 / 느려도 단단해 믿음이 가는 드로잉 / 문성식 작품만의 철학적 성찰 놓치지 않아 ‘만남’(2018). 마주한 얼굴과 흐르는 눈물에서 두 사람 사이의 강한 끌림과 거기서 오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권오열 촬영, 국제갤러리 제공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가족 5월은 1년 중 유독 행사가 많은 달이다. 사실 매달 행사는 비슷한 숫자로 존재한다. 하지만 직접 참여하는 날들이 있어 그렇게 느껴진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몸을 움직여 가족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외식을 하고 선물과 카네이션을 건네는 패턴을 반복하며 매해 보내는 날. 그러나 그렇게 한결같이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되새길 감사한 기회다. 얼마 전에는 한 책을 읽고 가족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영화감독 이경미는 가족에 관한 글을 다음과 같이 썼다. “어쩌다 태어났는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멤버는 이미 정해졌다. 이건 확실히 복불복이다.” 웃으며 읽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모와 자식 사이는 정말 그렇다. 그리고 이 랜덤한 관계는 설명하기 힘든 강한 끌림을 바탕으로 평생 이어진다. 끌림을 생각하자 지난겨울 한 갤러리에서 본 문성식의 그림이 떠올랐다. ◆문성식이 그리는 느리고 튼튼한 그림 문성식이라는 이름에는 ‘미술계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함께 다닌다. 198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수학했다. 이때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미술계에 줄곧 주목받으며 주요 갤러리와 기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두산갤러리, 국제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아르코미술관, 프라하비엔날레 등의 단체전과 행사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행보를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괴로워졌다. 그는 이 시기를 미처 덜 핀 꽃이었는데 그만 서리가 내렸다고 말한다. 전시는 잡히는데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쥐어짜듯 일정을 소화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어서 창작에 대한 고민이 더 힘들었다. 이후 밖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최대한 자유로워지려고 애쓰며 살았다. 이런 노력은 결국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문성식은 2006년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5년이 지나서야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그 전시부터 5년이 지나 세 번째, 다시 5년이 지나 네 번째 개인전을 선보였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보통 6개월가량이 걸렸고 철학적인 성찰로 3년간 붙잡은 그림도 있었다. 작업에 집중하려 강의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전시는 방문할 때마다 회화에 관한 숙고가 느껴진다. 주제는 물론이고 작업과 표현 방식의 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공들인 작품은 느리지만 튼튼하게 오래 남을 그림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이렇게 진지하게 회화를 대하는 이에게 화가, 좋은 작가라는 말 이외의 수식어가 필요할까 싶다. ◆문성식의 시선이 보는 세상의 모습 문성식은 초기에 연필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다. 종이 또는 천 위에 선을 남기거나 수많은 선을 겹쳐 면을 만드는 드로잉이었다. 선으로 그리는 드로잉이 서양 미술사에서 과정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선이라는 요소가 동양화에서 정서를 전달해내는 모습을 보고 믿음이 갔다. 시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존재를 남기기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도 했다. 그렇게 그려낸 것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기억 속의 일이었다. 시골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이 자주 그렸는데 정겨움을 그리려던 것은 아니다. 김천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는 가장 보통의 감정과 순간들이 모두 존재하는 장면이었다. 살아가며 경험하는 면면을 시선만큼 섬세한 손길로 포착하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자기 작품세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세상엔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개수만큼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빛은 그것들의 모습을 만들며 그것들은 내 안에서 풍경이 된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절실함과 동시에 무심하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일부이며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내 그림이 된 것은 그런 것들이다.” ‘청춘을 돌려다오’(2010)는 시골 잔칫집을 그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고속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화면 속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노인의 모습은 마냥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 슬픔과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영화에서 김혜자가 아들을 위해 살인을 하고 그것을 잊고자 춤을 췄듯이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기쁨 속에서 슬픔, 아름다움 속에서 추함의 시간을 보는 문성식의 시선이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면면을 그대로 볼 줄 아는 시선. 이렇게 문성식의 작품은 우리가 무심히 지난 풍경에 감각과 감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단순한 기억으로 남을 법한 장면에도 의미가 내포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 그리고 끌림 문성식은 최근 유화 드로잉과 채색 드로잉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드로잉과 회화를 하나로 융합해 자기만의 작업방식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를 비롯해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벽화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캔버스에 칠을 하고 젯소를 두껍게 발랐다. 그것을 긁어내어 형상을 만들고 수채물감 과슈로 칠했다. 그렇게 벽화처럼 표면과 질감이 느껴지는 두꺼운 드로잉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끌림에 관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초기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다. 오랜 시간 인간사와 주변 만물을 바라보자 존재의 사이에 근원적인 끌림이 보였다. 이 끌림을 다큐멘터리 같은 풍경화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냥 삶’(2017∼2019) 연작 중 한 점. 붉게 물든 장미를 두고 나비가 날아들고 사람의 손도 다가온다. 장미의 생로병사는 욕망을 담은 인간세계의 모습과 닮았다. 박동석 촬영, 국제갤러리 제공 ‘그냥 삶’(2017-2019)은 사람, 곤충이 꽃에 이끌리는 당김에 관심을 가지고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집 앞 작은 땅에 장미를 심어 3년 정도 키웠다. 그동안 장미가 보여주는 사이클을 살펴보는 데 빠졌다. 장미는 번식을 위해 꽃잎을 활짝 피고 나비가 오기를 기다렸고, 그 사이에 거미는 줄을 치고 은거했다. 장미는 이름을 듣고 떠올리는 단순히 봄에 피는 예쁜 꽃이 아니었다. 그것의 생로병사는 욕망의 반영 같았고 사람이 사는 세계의 축소판 같았다. ‘끌림’(2019)은 10여점의 작품으로 구성한 연작이다. 매스컴을 통해 접한 이산가족의 이별 장면을 그렸다. 그중 특히 애절하게 느껴진 손의 모습에 집중하여 화면에 담았다. 예정된 이별을 앞둔 절박함과 생명에 내재하는 강한 끌림이 그대로 느껴진다. ‘만남’(2018)에서도 서로 얼굴을 맞댄 채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세월이 지나도 가족 사이에는 서로를 알아챌 수 있는 본능과 떼어낼 수 없는 끈끈함이 분명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냥 우리 삶의 섭리와 같은 관계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꽃에 나비가 날아들 듯 서로를 찾으며 살아갈 관계.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야 할 관계.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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