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힘들게 하는 정부의 선택적 소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교회 지도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 좋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평소 어법과 달리 내면의 정서를 드러낸 말이다. 문 대통령의 이 말은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 대통령의 소통 철학이 담긴 말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시중의 부정적 여론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민은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신경 쓰지 않겠다’ 정도인 것 같다.
대통령은 소통 누누이 강조하나
편 가르기로 말과 행동 불일치
소통은 상대 이해·공감에서 비롯
진정한 소통은 자기 변화 있어야
아쉬운 것은 사람들이 왜 욕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비판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 것인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사실 국민과의 소통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수시로 소통하고, 설득하며, 하나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소통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일방향이며, 소통은 쌍방향이다.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정부가 정의·공정·인권 해석 독점
자료: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연설문집(https://www1.president.go.kr/c/president-speeches)
.지금 정부 소통의 특징은 ‘선택적 소통’이다. 소통은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 지지층과 반대층을 나눠서, 포용과 배제 기준을 적용한다. 문 대통령은 3년 전 대통령 선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2017년 5월 8일)라고 했다. 취임사에서는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2017년 5월 10일)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결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편 가르기식 소통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정의와 공정, 인권의 해석 권한을 독점하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반개혁 세력으로 구분해 왔다.
“촛불혁명은 대통령으로서 나의 출발점”(2017년 6월 3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만찬) “촛불정신의 항구적 구현을 위해 새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이을 것”(2017년 7월 19일 국정과제 보고대회)이라는 말은 정부의 정체성을 드러낸 말이다. 또 “촛불혁명 주역이었던 시민사회는 국정의 동반자이자 참여자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가 곧 국민의 목소리”(2019년 4월 1일 시민사회 초청간담회)라는 말은 촛불 세력에 대한 편향성을 정의와 공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소통은 촛불 뒷전이요, 후순위 과제이다.
정부 소통의 또 다른 특징은 ‘말’과 ‘행동’이 불일치한 경우가 많다. 그래픽에서 보듯 대통령 본인이 소통과 화합을 강조했음에도 결과는 실망스럽다. 소통은 구호였다. 제도화되지 못했다. 심의와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공화주의는 정착되지 못했다.
“국민과 가까운 곳에서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다”(대통령 취임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끝장토론을 하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기자회견을 가장 적게 한 대통령이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조국·윤미향 사태에서 전조가 있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소통하겠다는 약속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는 최근 한 여권 인사의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포털 관계자에게 “들어오라 하세요”라는 여당 의원의 문자 메시지는 포털 뉴스 편집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지 않았는지 강한 의혹을 품게 한다.
소통 장애물은 변하지 않는 자의식
문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한다고 했다. 포털은 인공지능(AI)이 뉴스를 편집하기 때문에 뉴스 편집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네이버·다음 포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이다. 선거 소송 처리 지연은 소통이 외면되거나 방치되는 경우이다. 4·15 총선 이후 120여 건의 선거 소송이 제기됐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섯 달이 지나도록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다.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공감을 도모하는 방향이 아니다. 포털 편집 개입 의혹과 선거 소송 지연은 공동체의 소통을 왜곡한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다.
정부는 반대 세력과의 소통에 대단히 소극적이다. 선거 승리는 비판 세력과의 소통 필요성을 잠재웠다. 다수결에 따른 의사 결정은 편리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결이 소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모두 소통에 실패했다. 권력을 위임해 준 국민과 잘 소통하지 못했다. 소통의 참 의미를 실천하지 못했다.
소통은 잘 듣고, 상대를 이해하며 공감하는 데서 비롯된다. 소통하자면서 ‘나는 변하지 않을 테니, 네가 변해라’라거나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을 나누자’라고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상대방을 제압과 변화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극단으로 대치하는 것은 불통이다. ‘반미(反美)면 어때’라던 노무현 대통령은 그래도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원집정부제 개헌 시도를 통해 변화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합의와 소통을 존중한 대통령이었다.
형식적 대화는 소통이 아니다. 진정한 소통은 자기 변화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변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소통의 가장 큰 장애물은 타인의 생각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자의식일 경우가 많다. 소통 없이 ‘그래도 가겠다’는 입장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힘들어진다. ‘광장의 정치’가 생긴다. 정부가 반대 세력과 불통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편의적·선택적 소통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막힌 소통 구조와 언로(言路)를 정상화해야 한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87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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