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아침을 열며] 강원, 제주의 꿈꾸는 크리에이터들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

제주 로컬 크리에이터를 위한 네트워크 컨퍼런스 ‘로컬 게더링 2020 제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유니콘이라는 말은 익숙하실 겁니다.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신생기업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투자자들,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미리 읽어내려는 사람들은 어떤 기업이 다음 유니콘으로 성장할지 관심이 큽니다. 여러 예측방법이 있지만 지금까지 누적투자를 많이 받은 기업을 살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스타트업 옹호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100억원 이상의 누적 투자를 받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264개이고, 300억원 이상 투자받은 곳도 70개나 됩니다. 이 수치는 이미 매각되었거나 상장한 기업들을 뺀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대규모 투자 소식도 점점 자주 듣게 됩니다. 지난달만 해도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2.000억원 넘는 자금을 유치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과 걱정의 목소리도 많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볼 때도 창업하기에 결코 나쁘지 않은 나라입니다. ‘스타트업지놈’에서 며칠 전 펴낸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비교 보고서는 서울을 세계에서 20번째로 매력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로 평가했습니다. 20위는 낮은 순위가 아닙니다. 싱가포르나 베를린 같은 전통적인 강자들의 바로 다음이고, 미국의 새로운 스타트업 중심지로 평가받는 샌디에이고, 중국의 하드웨어 스타트업 성지 선전보다도 더 낫다고 평가된 것입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을 일입니다. 이 보고서는 서울이 가진 고학력 인재와 풍부한 자금에 주목했습니다.

스타트업생태계 근처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제게 이런 변화는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도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쓴 ‘우리나라’라는 말은 사실 모두 ‘수도권’이라고 바꾸어야 합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곳에는 스타트업 중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투자를 받은 기업들의 90% 이상은 수도권에 있습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인재들은 비좁은 원룸에서 살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서울로 몰려듭니다. 대전과 부산 지역의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노력은 주목할만 하지만, 수도권의 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산업은 물적 기반에 의존했기 때문에 수도권 이외의 지역이 주는 저비용의 강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시장 혹은 첨단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고, 인적자원이 핵심경쟁력인 스타트업의 경우 비수도권지역에 자리 잡을 유인이 거의 없습니다. 스타트업이 활성화될수록 젊은 인재들의 수도권 집중과 지역산업의 공동화가 일어나는 역설입니다.
    
'로컬 게더링 2020 제주'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카카오패밀리 발표 모습.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명쾌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전 세계가 비슷한 통증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관행적으로 사용해 온 지원금이나 공간 지원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강원도나 제주도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사업을 유심히 봅니다. 수도권과 비슷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아니라, 전혀 다른 미래를 내다보면서 탈물질주의적 문명 전환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지역 내에서 연결하고 성장시키겠다는 야심말입니다. 이런 시도를 묵묵히 밀고 나가고 있는 이들이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첨단기업 출신이라는 것도 매우 재미납니다. 서울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쑥쑥 자라고, 다른 한편 지역에서 이런 문명사적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강원과 제주의 작은 소식에도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1812000003678?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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