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토종 로펌, 이대론 승산없다 / 김문환 국민대 총장·법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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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 등 시장국가의 힘이 세계를 뒤흔들면서 영미법의 위력 또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성문법 국가의 맹주로 자부하는 독일과 일본의 법률시장을 불문법주의 나라인 영미의 로펌이 평정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세계 각국의 법률시장은 오늘날 영미계 대형 로펌의 적극적인 글로벌 전략에 하나 둘씩 점령되어 가는 게 현실이다. 일본은 18년이라는 기간에 단계적으로 법률시장을 개방하면서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참담하다. 일본의 토종 중대형 로펌 15개 중 절반이 넘는 8개가 합병 등을 통해 영미 로펌에 흡수됐다. 나머지도 언제까지 이름을 지키면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불명확한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일본 토종 로펌을 흡수 합병한 영미 로펌에서 일본 변호사 수십 명을 해고해 일본 열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독일의 상황은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1998년에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의 10대 로펌 중 토종 로펌은 현재 2곳에 불과하다. 단일 국가로는 법률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컸던 독일의 법률시장이 송두리째 영미 로펌의 텃밭으로 바뀐 것이다.
국내 법률시장 개방이 얼마 남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사례는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우선 시장개방을 앞둔 국내 법률시장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미계 대형 로펌은 국내 시장에 들어와 있거나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간판만 내걸지 않았을 뿐 이미 국내 대형 인수합병(M&A) 거래나 프로젝트 파이낸싱 거래에서 외국계 대형 로펌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미 대형 로펌에는 대개 2000명 이상의 변호사가 있다. 변호사가 4000명에 육박하는 로펌도 있다. 법률시장이 아직 개방되지 않았는데 영미 대형 로펌이 국내 법률거래 수요를 상당 부분 잠식하는 현상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국내 로펌의 현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로펌조차 변호사가 200명을 겨우 넘을 뿐이니, 영미 로펌에 비교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국내 로펌은 저마다 금융, 조세, M&A, 송무 등 전문 분야가 있다고 표방하지만 폭과 깊이에서 선진 로펌과 경쟁하기 힘들다. 국내 로펌이 규모나 전문화, 시스템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달하기 전에 국내 법률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국내 로펌의 대다수는 생존 차원에서 영미 대형 로펌에 흡수되거나 하청업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법률시장은 우리 손으로 반드시 보존하고 육성해야 할 중요한 산업이다. 법률시장은 그 나라 사회, 문화의 근간인 법률제도의 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국민 일반의 생활에 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법률시장이 외국계 로펌에 장악될 경우 국부가 유출될 뿐 아니라 사회적 제도나 문화적인 종속까지 우려된다. 국내 법률시장을 영미 로펌이 좌지우지하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법률 비용이 증가하고, 평생 법정에 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던 가치관이 흔들려 사소한 시빗거리를 놓고 변호사를 선임해 다투는 장면이 속출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정서에 맞게 고유의 법률제도를 유지하고 운용하려면 토종 로펌이 굳건히 법률시장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법률시장 개방을 목전에 둔 지금이야말로 토종 로펌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전문화와 대형화를 추진하여 영미 대형 로펌과 일전을 벌일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성원을 아낌없이 보내 줄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김문환 국민대 총장·법학 출처 : [동아일보 2006-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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