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시평] 인문학 위기의 진짜 이유/조중빈(정외)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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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중빈] 필자가 인문학 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처지가 되는지 모르겠다. 근자에 인문대 교수들이 위기를 선언할 때 사회과학자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끼어들기가 더욱 그렇다.
그래도 남의 일 같지 않아 귀 기울이고 있으니 필자도 평소 느끼던 문제들이 들려온다. 학생들은 인문학과를 기피하고, 졸업생들은 취직이 안 되고, 인문학 연구지원에는 인색하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결국에는 학과를 없애야 될 정도로 인문학이 대학.사회.정부로부터 홀대받고 있다는 것이다. 성토는 곧 물질만능주의에 병들어 있는 사회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는 이런 문제라면 사회과학도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이 '위기'를 모르니 더욱 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 둘째는 학생들을 재미나게 해주고, 교수에게 연구비를 더 많이 지원하고, 사회인의 정신교육을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라는 의문이다.
이런 식의 해법은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약효가 떨어지면 곧 병이 도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문학이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던지는 질문 공세, 얼마나 괴로운가?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왜? 왜?" 대학에서 하는 일도 이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인문학이 전문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이게 뭐야"다. 예컨대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 아니면 웬 생뚱맞은 이야기를 시작하나, 화가 나기도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대해 해결을 봐야 한다. 인문학이 본질적으로 '사람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은 별것 아닌 존재"로 낙착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사람이 정말로 별것 아닌가"라는 문제를 놓고 학생들과 씨름하다가 그러면 원점으로 돌아가 개와 사람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가운데 "개도 거울을 볼까, 거울 속에 자기가 보이면 그게 자기인 줄 알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개와 사람의 종차(種差)다"라고 선포하고 정리해 보니 '사람'이 보였다. 사람은 거울 속에다 자기(self)를 끄집어내어 볼(reflect) 뿐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창조한다. 거울 앞에서 머리 빗질하며 근사한 자기 얼굴을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간은 이렇듯 꿈꾸는 존재다. 물론 꿈을 안 꿀 수도 있다. 그때는 개 같은 인생이 된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역사에 대해 꿈을 꿀 때 사회가, 역사가, 인생이 변한다. 그런데 우리는 개화기 이후 여태까지 서구 근대인들의 꿈을 강요받아 오고 있다. 다른 꿈을 꾸면 안 된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사회에는 갈등이 필연적이고, 역사에는 법칙이 있다"며 그들이 근대라는 짧은 기간 동안 경험한 것을 우리에게 정답이라고 우기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문학이 "사람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복원하고(적어도 우리가 개보다는 낫지 않은가), 우리가 꾸는 꿈의 정체를 해석해 줄 수만 있다면(여기가 문화종속에서 벗어나 문화창조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학생이, 사회가, 정부가 돌아올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가진 자원은 세계문화유산급이다. 아직도 잊지 않고 "인간아, 인간아"를 외치고, "꿈은 이루어진다"며 밤을 새우는 우리가 있지 않은가? 제발 성공해서 "왜?"라는 질문에 매달려 '물건학'으로 연명하는 사회과학을 구원해 주기 바란다.
조중빈 국민대.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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