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뜬다’ 복합건축 시대
덴마크 코펜하겐에 새로 들어선 코펜힐. [사진 각 건축사무소]
지난해 10월 완공된 ‘코펜힐’(CopenHill)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 생긴 인공산이다. 산이 없는 코펜하겐의 명소로 떠올랐다. 흔히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열병합발전소 아마게르 바케(높이 85m) 외부를 스키 슬로프와 등산 코스로 꾸민 아이디어가 혁신적이다. 덴마크 건축가 비아케 엥겔스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폐기물 에너지 발전소로 설계했다.
공간 효율성 높이고 도시에 활력 흉한 주차장에서 패션쇼도 열어
피렌체의 명물 베키오다리 선례 고가도로 밑은 커뮤니티 장소로
발전소 상부와 측면(작은 사진)에 스키 슬로프를 만들었다. [사진 각 건축사무소]
구체적으로 발전소 경사면을 따라 9000㎡ 크기의 스키장이 조성됐다. 인공 스키 슬로프는 연중 내내 개방된다. 레저 문화와 산업용 발전소가 결합한 새로운 종류의 건축물이다. 코펜힐은 연간 폐기물 44만톤을 청정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 주변 15만 가구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한다. 발전소 외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등반 벽도 있다.
현대 건축은 고정 관념을 거부한다. 기능·성격이 다른 공간을 묶어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낸다. 특히 도시 확장 과정에서 생겨난 기피시설, 예컨대 쓰레기처리장이나 볼품없는 고가도로 등을 변형시켜 공원·공연장·갤러리 같은 문화시설로 빚어낸다. 제한된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이를테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거양득 건축이다. 전문용어로 이종 교배, 이종 결합 건축이다.
네덜란드의 신흥 명소 ‘마르크트할’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명물 마르크트할(마켓홀). [사진 각 건축사무소]
미국 LA 마이애미 비치 링컨 로드 주차장도 대표적 사례다. 도시 흉물로 꼽히던 옥외주차장을 전에 볼 수 없던 공간으로 빚어냈다. 일종의 편견 깨기다. 디자인은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뫼롱이 맡았다. 벽이 없는, 완전히 열린 다목적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주차장 건물에 식당 및 주택, 촬영장과 공연장 등을 결합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링컨 로드 주차장. [사진 각 건축사무소]
예컨대 각 층의 높이를 일반 주차장보다 2~3배 높게 만들었다. 차량 300대를 수용하는 주차 기능은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파티나 사진·영화 촬영, 패션쇼, 콘서트, 기타 사교 등에 맞게 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다. 주차장 상층부에는 식당과 가게, 개인 주택 등을 배치했다.
건축계의 이종 결합 트렌드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대변한다. 오늘날 사회는 다양한 분야가 상호 작용하며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 사람이 섞이고, 문화가 교류하며 제3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일례로 유전공학이 그렇다. 부단한 결합과 복합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아치형 아파트 안쪽에 전통 시장을 들여놓았다. [사진 각 건축사무소]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마르크트할(마켓홀)은 요즘 유럽에서 가장 핫한 장소 중 하나다. 시장이라는 공공 공간과 집합 주거의 색다른 결합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아치 모양의 아파트 아래 거대한 시장 공간을 만들었다. 2014년 개장한 이곳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시장을 감싸는 아치형 지붕에 200여 가구가 사는 아파트를 만들었다. 유럽 최대 무역항으로 꼽히는 로테르담의 아이콘이 됐다.
마르크트할은 네덜란드 건축 스튜디오 MVRDV가 디자인했다. 시장 3층부터 11층까지 임대 아파트 총 102개와 일반 아파트 126개가 입주해 있다. 각 아파트에는 외부 테라스가 달렸고, 최상층 펜트 하우스 24개에는 매우 넓은 옥상 테라스가 있다. 마르크트할은 오래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장 내부의 식품점과 음식점·카페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댄다. 야외 시장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주효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관광 명소인 베키오 다리. 도시를 잇는 다리 위에 다양한 상점이 들어서 있다. [사진 각 건축사무소]
1994년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을 잊을 수 없다. 이곳 아르노강의 베키오 다리에서 이종 복합의 실마리를 읽을 수 있었다. 베키오 다리는 1345년 이탈리아 건축가 타데오 가디가 설계한 중세의 유산이다. 강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 위에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을 올려 놓았다. 완공 당시 다리 양쪽에 건물을 배치했고, 이를 정육점 주인 및 무두장이에게 임대했다. 이후 우피치 미술관과 베키오 궁전을 잇는 길이 1㎞ 바사리 회랑이 다리와 연결되면서 피렌체 최고의 관광 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회랑을 따라 다양한 상점이 들어선 것은 물론이다. 이종 결합 건축의 선구적 케이스다.
둘로 쪼개진 마을을 새롭게 연결
네덜란드 북부 도시 코흐 안 드쟌(Koog aan de Zaan)의 실험도 혁신적이다. 수도 암스테르담 근처의 쟌강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이곳에 1970년대 초반 새로운 고가(고속)도로가 건설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로가 오래된 마을을 갈라놓고 말았다.
건축가그룹 NL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하이웨이 A8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고가도로 아래 생긴 공간을 마을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도로 아랫부분에 스케이트장, 브레이크 댄스 스테이지, 그래피티 갤러리, 축구장, 농구 경기장, 주차장, 슈퍼마켓, 꽃가게, 생선 가게, 조명 분수, 버스 정류장, 파노라마 데크 등을 설치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 및 상점 주인 그리고 청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커뮤니티 공간의 요체는 이용자들의 대화와 교류다. 이와 함께 고속도로 옆에 초록빛 가득한 작은 공원을 만들었다. 고속도로 밑으로 시장과 광장이 생기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파노라마 데크에선 강 너머 멋진 전망도 감상할 수 있다. 둘로 나뉘었던 마을이 다시금 연결되며 도시가 더욱 풍성해졌다.
외국의 다양한 이종 건축 실험은 한국에도 시사적이다. 도시는 커지는데 마땅히 새로 집을 지을 장소가 없는 택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시 재생과 주택 공급이란 두 토끼를 잡는 데 효과적이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추진 중인 서울시 신내 컴팩트 시티 조감도. 도로와 공원·아파트 등을 연결했다. [사진 각 건축사무소]
.일례로 서울시에서 공모한 ‘신내 컴팩트시티’를 들 수 있다. 북부간선도로 신내 IC에서 중랑 IC를 잇는 약 500m 구간을 활용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필자가 속한 운생동건축 등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북부간선도로를 인공 대지로 덮고, 공공 주택단지로 만들자고 제안해 당선됐다. 도로에 의해 끊어진 도시를 다시 잇기 위해 도로 위에 일종의 다리를 놓는 ‘브릿지 시스템’을 구상했다. 고속화 도로와 공원, 집합주거, 커뮤니티 등을 입체적으로 연결했다. 도시를 새롭게 재편하고 활성화하는 창조적인 방안인 이종 결합 건축은 앞으로 더욱 왕성하게 시도될 게 분명하다.
카페 위에 만든 농구 코트
농구대 바
.네덜란드 중부 도시 위트레흐트에는 1633년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이 있다.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NL이 2000년대 초반 위트레흐트 대학에 만든 ‘농구대 바’(Basket Bar·사진) 또한 명물로 꼽힌다. 야외 농구장과 카페 공간을 하나로 연결한 형태다.
구체적으로 기존 서점 건물을 확장해 계단형 바닥을 포함한 카페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했고, 그 위에 평평한 농구 코트를 마련했다. 학생들이 애용하는 문화 공간과 운동 공간을 한데 엮은 것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로 캠퍼스 활용도를 크게 높였다. 이처럼 이종 공간의 결합은 특별히 난해한 작업이 아니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두 개의 대학 공간을 수직적으로 병치해 제3의 멋진 건물을 빚어냈다.
장윤규 국민대 교수, 운생동건축 대표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90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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