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혁명적 백일몽의 표상들, 사회주의 시각 어법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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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제』(조선노동공제회, 1920) ‘제6회 전국 형평사 대회’ 포스터(형평사, 1928) 노동과 집단, 단결 조선의 여러 계층 중 가장 천하게 대우받던 집단이 백정이었다. 이들의 호적에는 도한(潳漢: 도축하는 남정네)이라는 붉은 표식이 찍혀서 대물림됐고, 비단옷을 살 수도 없었고, 돈이 있어도 기와집에 살지도 못하고, 항상 초립을 써야 했다. 이런 가혹함에 분개한 진주 양반 출신의 강상호와 백정 이학찬 등이 주도하여 1923년 창립한 단체가 ‘형평사’였고 이들은 계급 타파, 공평한 사회 건설, 교육 균등의 기회 등을 요구했다. 1928년 ‘제6회 전국 형평사 대회’ 포스터에는 흰옷을 입은 남성이 한글 풀어쓰기로 ‘형평’이라고 쓰여진 붉은 깃발을 들고 서 있다. 힘차게 뻗은 손과 굳게 디딘 다리, 깃대의 사선이 역삼각형의 역동성을 보이면서도 형평을 이룬다. 배경에는 인물의 흰색을 강조하기 위한 짙은 푸른색이 쓰였다. 분출되는 운동성, 명확한 메시지만이 부각되는 디자인이다. 특히 술이 달린 깃발 형상은 『공제』 창간호에서도 보이는데 이 표지에서는 대중이 커다란 깃발을 지구에 꽂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깃발의 형식은 조선의 구식군대가 사용하던 ‘휘’라고 불리는 꼬리가 달린 모습을 차용한 것으로 서구의 깃발과 다른 조선적 표상이었다. 『시가집』(삼천리사, 1929) 표지와 내지
『신여성』(개벽사, 1932.1) 조명희의 또 다른 작품 중 ‘신문학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자산’이라고 평을 받은 그의 대표집 『낙동강』에는 머리와 등에 짐을 지고, 강을 건너는 가족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고, 위아래로 붉은 선이 그려져 있다. 선이나 박스로 이미지와 공간을 분할하는 기법은 당시 러시아의 구성주의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던 방식이다. 러시아 혁명기에 혁명정부와 함께 예술로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려 했던 예술가, 디자이너들은 말 그대로 세계를 구성하고 구축하는 ‘구조주의(Constructivism)’라 불리는 새로운 시각 어법을 창안했다. 다양한 소재의 콜라주 기법과 당대 신기술인 사진 합성, 기하학적인 라인의 배치를 통해 화면을 구성했다. 사진은 특히 사실성이라는 신뢰감을 주면서도 합성을 통해 시각적 환상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다. 러시아를 사상적 모국으로 삼고 추종하던 1930년대 조선의 사회주의 잡지들은 이렇게 러시아 구성주의적 기법을 대거 빌려왔다. 하지만 이미지와 한자 제호, 독특한 활자체의 사용 등으로 조선만의 표정을 드러낸다 영화인 김유영이 무산 계급(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노동력을 판매해 생활하는 계급)의 정당한 계급 운동을 하겠다고 표방한 『시대공론』의 표지는 카프계 영화인이었던 추적양이 디자인한 것으로 빨간색 배경과 거친 망점의 흑백 사진, 사선의 기하학적 선 등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특히 손바닥이 전면적으로 보이는 거부의 자세, 외치는 듯한 인물은 1929년 제작된 러시아 영화 〈제국의 잔해〉 포스터와 유사하다. 또한 『대중』의 타이포그래피는 글자 형상 자체가 강하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사선으로 배치된 발행연도 등은 조선의 구성주의적 감각을 표출한다. 개벽사가 발간한 여성지 『신여성』에도 여성 노동자의 기표가 등장했다. 해방 후 시각 선동 기법
『횃불』(우리문학사, 1946)
해방 후 발간된 사회주의 경향의 표지들은 단순한 상징을 사용한 예시가 많다. 중국의 근대 격변기 극을 번안한 『뇌우』의 표지는 강한 붉은 번개를 배경으로 각광(脚光)을 받는 여성 사진이 극적인 효과를 보인다. 대표적인 러시아 구성주의적 어법이다. 화가 이주홍이 디자인한 인민문고 『맑스주의의 원천과 구성』은 싱싱한 보릿단과 연기를 내뿜는 공장의 결합, 나사로 조여놓은 듯한 제호 박스를 통해 농민과 노동을 동시에 형상화하고 있으며, 또 하나의 그의 작품 해방기념시집 『횃불』에도 별, 군상의 모습이 선으로 정리되어 있다. 『레닌과 노동조합운동』(우리서원, 1946) 『맑스 엥겔스 예술론』(건설출판사, 1946) 조현신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 표현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글항아리, 2018)를 출간했다.
원문보기: https://blog.naver.com/todayslibrary/222107657372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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