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윤동호의 눈] 소년, 함부로 하지 말자 / 윤동호(법학부)교수

“개XX들아!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인 줄 알아. 담배 피우고 지랄이야.”

어두워질 무렵 귀갓길에 건물의 으슥한 부분에서 들리는 고성에 놀라 쳐다보았다. 고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 명이 슬그머니 도로를 지나쳐서 건너편 길로 쫓기듯이 갔다. 어찌나 처량하게 보이던지. 흡연지역에서 떳떳하게 담배를 피우기 곤란한 아이들의 반복되는 행동에 화나고 지쳐 있는 듯한 짜증 섞인 목소리였지만, 그 어른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걸 참았다. 꼭, 이렇게 막말을 해야만 했냐고.

‘범죄로 나아갈 우려가 있는 소년’을 의미하는 우범소년이라는 단어는 1958년에 소년법을 제정할 때부터 있었다. 범죄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나아갈 우려’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도 소년이라는 이유로 소년원에 가둘 수 있고, 민간보호시설에 보낼 수 있도록 소년법이 규정하고 있다. 우범성인이라는 말은 없다. 우범성인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제한하는 처분을 했더라면 어른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에게 우범소년을 덧씌워서 피해학생과 격리하자는 주장이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서 교육부가 올해 초 마련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에 담겼다니 할 말이 없다. 소년을 보호하는 처분이라고 소년법은 말하지만, 실제로는 소년을 격리해 사회를 보호하는 처분이라고 봐야 한다.

보호자를 대신해서 소년을 보호하는 민간보호시설도 우범소년을 소년법정에 세울 수 있다. 민간보호시설에서 복종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보호처분을 받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알았다. 소년원이나 민간보호시설에서 약물복용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우리 어른들도 조심하는 약물에 아이들을 너무 쉽게 노출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다가 그중 한 명이 다친 사건을 처리하는 소년법정을 볼 기회가 있었다. 우범소년 개념에 기대 과실치상죄가 되는지 명확히 가리지 않은 채 과도한 업무부담 때문인지 사건의 처리가 지연되었다. 무려 3일간의 형식적인 조사와 교육 후 그 이듬해 말쯤 보호처분이 선고되었다. 경찰의 송치부터 선고까지 1년을 훌쩍 넘겼다. 마음고생이 컸을 그 소년은 그사이에 같은 행위로 학교 선생님의 조사도 받고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가서 눈물도 흘려야 했다.

소년범죄가 저연령화·흉포화되고 있으니 강력하게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 1963년에 소년법을 개정할 때도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 소년들이 성장해 어른이 된 것인데, 같은 말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 어른이 문제인가 따져보지 않고 힘없는 아이들만 겁주고 야단치고 비난한다. “라떼는 말이야~” 정도는 봐줄 만하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너무 함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원문보기: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2010121411161&code=124&code=124&artid=20201012141116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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