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배규한/성매매 근절, 法만으론 안된다

[동아일보 2005-09-22 04:45]



성행위는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사적(私的)이고 은밀한 영역에 속할 뿐 아니라 동물적 본능에 속해 법으로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행위는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규제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9월 23일 기존의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대체하는 두 개의 특별법, 즉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통칭 성매매방지특별법)이 발효됐다.


특별법의 시행을 전후해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본능과 도덕의 영역을 법으로 규제하기 어려우며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반대 논리와, “이미 도덕과 규범의 울타리를 넘은 성매매 현실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찬성 논리의 충돌이었다. 시행 1년이 된 시점에서 볼 때 특별법은 ‘성매매는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제고했을 뿐 아니라 인권 사각지대에 있던 피해 여성 구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성매매 집결지의 성매매는 줄었지만 집결지 밖에서의 변칙적인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게 됐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것.


특별법 시행으로 성매매를 금방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법맹신론자다. 반대로 특별법까지 만들어 성매매를 규제할 필요까지 있겠느냐라고 생각했다면 그 실태와 심각성을 너무나 모르는 무대책의 방임론이다. ‘조건만남’ ‘스폰카페’ 등 신종 인터넷 성매매가 만연하고 주택가까지 침범하는 방문 성매매에 노래방, 비디오방, 피부관리실 등 온갖 장소에서 변태영업이 성행하는 현실은 무력화되다시피 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의 재판을 우려케 한다.


지금 와서 특별법 시행이 잘 됐느냐, 못 됐느냐를 따지는 것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법 시행의 어려움과 부작용을 어떻게 보완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매매는 음습한 곳에 피어나는 독버섯과 같아서 잘라도 잘라도 계속 돋는다. 그 독버섯은 인간의 동물적 욕망과 황금만능의 토양에서 자란다. 집결지를 단속하고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독버섯을 하나하나 잘라내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며 범위가 좁으면 꽤 효과도 있다. 따라서 성매매방지특별법에 따른 단속과 처벌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햇빛 비추고 바람 통하게 해야 독버섯이 사라진다. 흔히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정치적, 경제적 동물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동물’임을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여느 동물과 달리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행위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본능을 조정하고 서로 의지하거나 질서를 지키는 사회적 존재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 ‘사회화’다. 사회화 과정에서 인간은 가치관을 형성하고 규범을 내면화하며 법과 제도를 배운다.


법은 공적 영역의 행위를 규제할 뿐 사적 영역의 행위는 가치와 규범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인간의 대부분의 행위는 법이 아니라 내면화된 규범과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의 욕망과 수요·공급의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성매매를 모두 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난과 유해환경이 가출을 낳고, 가출 청소년이 성매매 피해자 또는 알선자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이제는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임을 직시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사회화 과정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족, 학교, 미디어 환경 등에 대한 분석 및 개선 등은 성매매 문제 해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배규한 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국민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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