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가장 먼저 치는 ‘영예’ 누린다… ‘오너’ 아니라 ‘아너’ 라 말하세요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흔히 쓰는 ‘엉터리 용어’

몰간·라운딩·티업 시간은 잘못
 멀리건·라운드·티오프 시간으로
 퍼팅 라이는 퍼트 라인으로 써야
 홀컵은 ‘역전앞’ 처럼 동어 반복

OB티·가라 스윙·우라·쪼루 등
 여전한 일본식 표현도 사라져야

 예나 지금이나 ‘먹물’깨나 드셨다는 분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쉬운 말을 구태여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독특한 소재와 화려한 영상으로 한때 많은 인기를 끌었던 한 TV 사극 드라마에서 도망간 노비를 두고 양반 역을 맡았던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사다. “반노의 일로 심상하여 분루가 종횡무진하더니, 이리 추쇄하여 만분다행일세.” “오동낙일엽에 농월이 창창이니 모두 감노불감언 아니겠습니까.”

분명 우리말인데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자막으로 처리된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뜻은 대강 이렇다. “도망 노비 때문에 화가 나 눈물 날 지경이었는데 그나마 잡아서 다행일세.” “하필 이 바쁜 추수철에 튀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는지요.” 양반들은 신분과 학식을 과시하느라 일부러 어려운 한자를 섞어 쓰며 시조체로 대화한다. 한국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외화처럼 자막이 딸려 나와 보는 내내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많이 순화됐다고는 하나 법령집과 법원의 판결문은 여전히 외계어 같은 일본식 한자어투성이다. 해방된 지 75년이 됐음에도 일본식 법률용어와 일본 법전을 그대로 베껴 썼던 과거 잔재가 남은 탓이다. 영어 단어에 토씨만 한국어로 바꾼 듯한 패션잡지의 기사들은 또 어떤가. 시대는 바뀌었지만, 사대주의에 젖은 양반들이 어려운 한자로 대화하며 우월감을 느끼던 조선 시대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영국에서 시작된 골프의 용어 대부분은 영어다. 우리말로 순화할 필요가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골프 용어 대부분이 외래어처럼 영어 그대로 사용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골퍼들은 정확한 용어 대신 소위 말하는 ‘콩글리시’를 사용하곤 한다.

우리말로 써도 될 것인데 굳이 어려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정확하지 않은 국적 불명의 엉터리 용어를 쓰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가장 흔한 실수가 멀리건을 ‘몰간’으로, 라운드를 ‘라운딩’으로, 아너를 ‘오너’로, 티오프 시간을 ‘티업 시간’으로 부르는 것이다. 멀리건은 티샷을 실수하고 이를 무효로 한 뒤 동반자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졸랐다던 멀리건이라는 캐나다 골퍼의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다. 라운드도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둥근 띠 모양으로 배치된 18개의 홀을 차례로 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라운딩은 각진 것을 둥글게 깎는다는 뜻으로 라운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너는 영어 단어의 뜻 그대로 볼을 먼저 치는 영예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왔다. 오너는 소유주다. 티오프는 티에서 공이 떠난다는 뜻이고, 티업은 티 위에 공을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래서 라운드 시작 시각은 티오프 시간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린에서 퍼트 라인을 ‘퍼팅 라이’라고 하거나 홀 또는 컵을 ‘홀컵’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라이는 볼이 놓여 있는 상태를 말하며, 퍼팅에서 공을 굴리고자 하는 홀과 공을 연결한 가상의 선은 퍼트 라인이라고 해야 한다. 라이를 브레이크나 경사의 뜻으로 잘못 사용하는 골퍼들도 있다. 또 홀이나 컵은 같은 말로 둘 중 하나만 사용해야 옳다. 홀컵이라 부르는 것은 마치 역전 혹은 역 앞을 ‘역전 앞’으로 잘못 쓰는 경우와 같다.

더블파의 의미로 쓰이는 ‘양파’란 말도 홀에 따라 각각 파3 홀에서는 트리플 보기, 파4 홀에서는 쿼드러플 보기, 파5 홀에서는 퀸터플 보기로 불러야 한다. ‘싱글 골퍼’는 싱글 디지트 핸디캐퍼 혹은 로 핸디캐퍼로 부르는 것이 좋다. 싱글 골퍼는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독신 골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에만 있는 ‘오비 티’도 정확하게는 ‘드롭 존’ 혹은 ‘드롭 구역’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다. 물론 이처럼 모든 용어를 뜻에 맞게 정확히 사용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원래의 의미와 용어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좋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일제강점기에 골프가 처음 국내 도입된 탓에 ‘가라 스윙’ ‘우라’ ‘쪼루’ ‘빠따’ 같은 일본식 용어를 쓰는 골퍼가 예전에 많았다. 평지보다 높게 솟은 그린을 의미하는 ‘포대 그린’ 같은 일본식 표현은 여전히 많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다. 정확히는 엘리베이티드 그린이 맞는다.

지난해 골프규칙이 6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개정되면서 바뀐 용어도 있다. 기존의 티잉그라운드는 티잉 구역으로, 해저드는 페널티 구역으로, 스루 더 그린(티잉 구역, 페널티 구역, 벙커, 퍼팅그린을 제외한 플레이하는 홀의 나머지 구역)은 일반 구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60101031839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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