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연정실패의 정치적 함의
연정실패의 정치적 함의

[한겨레 2005-09-25 19:57]


하한 정국을 뜨겁게 달구며 온나라를 벌집 쑤시듯 흔들었던 대연정 논쟁은 노무현 대통령이 “논란이 될 수 있는 정치적 사안은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일단 막을 내리게 됐다. 대연정 실패의 정치적 함의는 한마디로 대통령과 여·야 모두 국민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패배자라는 점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연정 드라이브에 빠져 있는 동안 대통령 지지도는 29%도 지키지 못한 채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한나라당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고, 참여정부의 핵심 지지계층인 20, 30대 젊은층에서조차 한나라당에 뒤지는 충격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대통령과 회동을 통해 연정을 저지하여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평하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도도 회동 직후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더구나, 야당 대표라는 막강한 프리미엄을 향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도 정치권 밖의 유력 후보에게 큰 차이로 뒤지고 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향후 또다시 전개될지도 모를 소모적인 연정 논쟁을 접고 국민 우선의 생산적인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라도 이번 논쟁을 통해 드러난 자신들의 미숙함과 한계를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과 측근들은 연정 실패의 원인을 야당, 언론, 국민 등 외부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 진지함을 보여야 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최근 한 초청 강연에서 “진보언론이든 보수언론이든 대연정과 관련해 비방만 하며 ‘공론의 장’을 마련해주지 않아 여론이 일방적으로 휩쓸리고 말았다”며 연정 실패를 언론 탓으로 돌렸다. 국민과 언론을 조롱하고 무시하며 자신들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이런 우매하고 천박한 논리가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했다면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더라도 국민을 상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면 ‘정치 실패’라는 부산물은 당연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좀더 큰 틀에서 우리 정치 문화를 고치고 정치 혁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려면 이번 연정 제안의 실패를 진솔하게 인정하고, 왜 실패했는지 근본 원인을 찾아내어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나라당도 ‘연정론을 반대하는 것 자체가 대안이다’는 폐쇄적 논리에서 벗어나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는 국정 발목잡기이고 반사이익만을 추구하는 저급한 정치이다. 한나라당은 연정론의 빌미가 되고 있는 지역주의 청산에 대해서도 “선거제도가 지역주의를 타파하지는 못한다”는 수세적인 반박 논리보다는 당당하게 대안을 제시하고 여당과 경쟁해야 한다.

박근혜 대표는 최근 한 대학 강연에서 자신의 정치관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무경쟁 시장을 개척한다는 ‘블루오션’ 경영전략 이론에 빗대어 설명했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합리적 경쟁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블루오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산적 정치란 권력투쟁은 지양하되 합리적 대안을 중심으로 무한 정책경쟁을 거쳐 이루어진다. 한나라당은 경제를 챙기라는 자신들의 요구가 과거사와 정치개혁 이슈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아야 한다. 역사는 상대방보다 한발짝 앞서 ‘자기 수정 메커니즘’을 작동하면서 ‘내 탓이오’를 몸소 실천한 세력에게 언제나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정치권이 이러한 역사의 법칙이 던지는 함의가 무엇인지 깊이 음미해보길 기대해 본다.

김형준/국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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