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기로에 선 러시아 민주주의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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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푸틴의 장기집권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2000년대 고유가에 기반한 러시아 경제 회복 및 빠른 성장을 발판으로 푸틴은 높은 지지를 받았으니, 그러한 그가 권좌에서 순순히 내려올 것인가가 푸틴 집권 2기에도 세간의 관심사였다. 당시 한국 학계에서는 푸틴의 소위 3선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전망이 논의되곤 했다. 그런데 푸틴은 놀랍게도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바로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총리직을 맡는 것이었다. 이는 레닌그라드국립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푸틴다운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즉 헌법을 존중하고 법치주의적 외양을 갖추는 해법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메드베데프의 손을 빌려 러시아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렸으니 푸틴은 또 다른 12년의 집권 가능성을 맞게 된 것이다. 푸틴은 어렵지 않게 2012, 2018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4기에 들어서서는 푸틴 피로감을 느끼던 러시아 시민들의 반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푸틴의 권력 장악력이 너무도 강했기에 러시아 정치에 큰 변화를 주지는 못하였다. 이제 2024년 이후 러시아가 '포스트 푸틴' 시대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푸틴의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 결정하는 일만이 남았다. 2024년에는 70대일 본인의 나이를 의식해서일까? 이번의 푸틴의 선택은 대통령-총리의 쌍두마차 해법이 아니다. 대통령의 계속 재임을 3기까지 할 수 있도록 한 한국식 3선 개헌도 아니다.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그대로 두되,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헌법 개정 이전 임기를 모두 제로로 리셋함으로써 3연임 금지에 저촉이 되지 않게 헌법 개정을 한다는 것이다. 설득력은 없지만, 황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이기는 하다. 이 또한 러시아 두마에서 소련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였던 하원의원 테레시코바가 제안한 것을 푸틴이 받는 형식을 취했다. 이번 투표에서 러시아 헌법 개정안은 통과될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최근 푸틴의 지지도가 50% 내외로 떨어지기도 했고, 개헌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헌법 개정안은 아마도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이번 투표는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 국민투표(referendum)가 아니라, ‘러시아전국투표(Всероссийское голосование)’로 진행된다. 전자와 달리 후자의 방식에서는 투표 참여율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러시아 유권자의 과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응답자의 과반 찬성만으로도 개정안은 통과 된다. 냉소적인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투표에 적극 참여할 푸틴 지지자들의 찬성표가 과반을 넘길 가능성은 매우 높다. 또한 이번 개헌안에는 동성애 결혼 금지와 같은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러시아 보수주의자들의 적극 찬성 가능성도 있다. 흥미롭게도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나발니가 제시한 러시아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한 예측을 하고 있다.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6%가 긍정 답변을 한 반면, 28%만이 부정 답변을 했다. 푸틴을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59%에 달한다. 한편 60%의 응답자는 헌법 개정이 푸틴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2024년 푸틴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항의시위 등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에 대해서는 34%는 그렇다고, 42%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시위가 일어날 경우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77%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반면, 오직 13%만이 참여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것은 푸틴의 장기집권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생각을 가진 러시아인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푸틴의 장기집권이 러시아 민주주의 발전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대통령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이 갖는 민주적 원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외양만 갖추려 할 때, 민주주의의 발전은 요원한 것이다. 절대 권력은 부패를 낳을 것이며 국민을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소련 시절에 이미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또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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