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화칼럼/이명옥]사설 미술관 한번 들러 보세요 / 사비나미술관장, 미술학부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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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5-12-13 04:27] 미술관 후원인 K가 올해 말에도 변함없이 기부금을 보내왔다. 모 방송국 기획실에 근무하는 K는 틈만 나면 전시장을 찾는다. 시중에 출간되는 미술 책들은 빠짐없이 읽고, 푼돈을 아껴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진정한 미술애호가다. 그러나 아무리 소문난 미술애호가라도 세밑이면 더욱 헐렁하게 느껴지는 호주머니를 털어서 미술관에 기부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가. 가슴이 뭉클해진 김에 행여 감사의 마음이 식을세라 서둘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년에는 더 좋은 전시로 후원에 보답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용기를 잃지 말라면서 한겨울 온돌처럼 따끈따끈한 화답을 했다. 독자 중에는 ‘미술관에 웬 기부금?’ 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짓는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미술관 하면 궁전처럼 멋들어진 건물과 천문학적인 작품 가격, 대중을 기죽이는 난해한 작품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명품 미술관과 기부금을 짝짓는 것은 얼마나 생뚱맞은 일인가. 그러나 독자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술관은 절대적으로 후원금이 필요한 곳이다. 왜냐하면 미술관은 비영리, 공익적 기능을 지닌 미술계의 둥지요 전시장의 종갓집인 반면 재정이 탄탄한 미술관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해묵은 오해도 풀 겸 사립미술관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사립미술관은 개인이나 재단이 설립한 미술관을 말한다. 까다로운 행정 절차를 거쳐 미술관 등록을 마치고 막대한 돈과 발품을 팔아서 미술관을 운영한다. 전람회는 기본이고 정기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작품 보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일반인의 미술교육에도 열정을 쏟아야 한다. 이처럼 책임과 의무는 큰 반면 정작 사립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전무하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국공립미술관과 달리 사립미술관의 수입은 달랑 입장료뿐이다. 입장료도 대부분 1000∼2000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사립미술관을 내팽개쳐 두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다수의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비영리 미술관과 상업적인 갤러리의 차이조차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봄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사립미술관의 재정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미술품 판매를 허용하자는 의견이 나와 논란이 일던 때의 일이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이 미술관에 전화를 걸어 왔다. 통화 도중, 안건에 대해서는 그처럼 의욕적인 보좌관이 막상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었다. 대체 한국의 관료와 정치인들은 미술관에 대해서 왜 그토록 관심이 없는 걸까? 답은 명료하다. 미술관과 담을 쌓고 사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가 본 적이 없으니 애정이 생길 리 만무하고 애정이 없으니 미술관에 대해 냉담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평소 미술에 무관심하던 사람이 해외에만 나가면 유명 미술관에 달려가 보란 듯이 기념사진을 찍는 일을 종종 목격한다. 이런 모순된 행동이 토종 미술관들의 가슴을 얼마나 멍들게 하던지. 독자여. 혹 이 글을 읽고서 ‘풀뿌리 미술후원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치솟는가. 그렇다면 실천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기적으로 미술관을 찾는 습관만 가지면 된다. 물론 ‘미술에 낯가리는 습성’이야 금세 가시지 않겠지만 한 해가 저물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까운 미술관을 찾으시길 권한다. 못내 쑥스러운 표정으로 미술관을 들어서는 그대들의 발자국 소리가 미술관에서 일하는 우리들에게는 ‘구세군의 종소리’처럼 들릴 테니까.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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