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이호선 칼럼] 광기(狂氣)어린 입법을 경계한다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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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래도 이건 약과다. 눈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가는 세상이 되었다. 아니 눈을 감고 있을 때는 가만있다가 눈 뜰 때를 골라서 코를 베는 것 같다. 거여(巨與)의 횡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일하는' 국회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따지고 보면 '못된 일하는 국회'로 만들려고 작정하는 것 같다. 위원장을 장악한 법사위에서는 장관놀이 중독증상을 단단히 보이는 법무장관을 불러다 놓고 자신들이 극찬하면서 임명했던 임기 절반도 안 지난 검찰총장이 눈엣 가시라며 도마에 올려놓고 요사스런 입길을 해댄다. 그 뿐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 내는 법안들은 천방지축으로 온통 헌법과 법치주의를 파괴하거나 무력화하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의 법체계를 요절내고, 대대로 국회 스스로를 웃음거리고 만들며, 나중에는 헌법 파괴주의자들로 역사는 물론 현실의 법정에서도 단죄를 받으려고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180석의 공룡 여당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으로 모자라서 시민(?)을 만들겠다고 시민 교육을 하는 돈과 시설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을 내놓은 그 이면의 정치적 의도야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일단 시민 단체를 모두 관변화하고 자기 정파 먹이 생태계를 아예 제도화하겠다는 그 뻔뻔함에는 말을 잃게 된다.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은 ‘정의연’과 같은 단체들을 정부의 재정 지원을 통해 생계형을 기업형으로 탄탄하게 키워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우리가 아직 비준하고 있지 않은 “결사의 자유” 등 협약에 대한 비준을 촉구한다는 명분으로 퇴직 및 해직 노동자들에게도 노조가입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의 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상태이다. 국제노동기구가 과연 그 비준의 전제로 퇴직 및 해직 노동자들에게도 노조가입을 허락해야만 한다고 요구했는지 그 근거에 대한 설명은 일체 없다. 이대로 법이 통과되면 '정년없는 전업 노조 간부'의 탄생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걸 두고 요즘 학생들 말로 '개꿀 빤다'고 하던가. 그 뿐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면서 대통령 직선제에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중남미 국가들임에도, 그렇게 말했다가는 국민들에게 '좀 없어 보일 것 같아서'인지, 독일에서 가져온 '신상(新商)'이라고 뻥을 쳤다. 그 뻥에 주눅들었는지 이 조잡한 상품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냉철하게 캐묻는 야당 의원 하나 보지 못했다. 패스트 트랙의 그 무지막지함을 핑계 댄다고 하면 일응 이해 못할 바도 아니나, 작년에 이 연동형 비례제 원산지 사기와 공수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듣보잡’ 사찰기구의 위헌성과 위험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국민 설득이 부족하였음은 지금이라도 야당이 대오각성해야만 한다. 그러니 눈 감을 때 코 베는 것이 아니라, 눈 감고 있으면 뒤통수 쳐서 깨운 다음에 코를 베어 가는 것 아닌가. 그 중 하나가 민주당 양형자 외 31명의 의원이 2020. 6. 1. 자로 발의한 ‘역사왜곡금지법안’이다. 법안 제안 설명에는 없지만, 이 법은 독일에서 나치 범죄를 처벌하는 형법의 규정의 취지를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법은 19대 국회에서 이미 2013. 5. 당시 민주당 김동철 의원에 의해서 발의되었다가 폐기된 바 있었다. ‘신상’도 아닐 뿐 더러, 이 법안이 참조하였다는 독일 형법의 취지는 이 법안과는 아주 다르다.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거나, 나치 통치를 찬양, 미화, 정당화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독일 형법의 골자이다. 우리도 향후 북한에 의한 대량 학살, 인권 탄압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이런 내용의 형사법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이다. 5.18의 경우 국가에 의한 시민 살상이 있었고, 이 살상 행위에 대하여 국가가 마땅히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웬만한 국민이라면 다 수긍하고, 그런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데 대하여 동의한다. 그런데 양형자 의원 등의 법안은 말이 ‘민주화 운동’에 대한 왜곡을 처벌하겠다는 것이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 판단에 따르지 않으면 국가 공권력으로 처벌하겠다는 가공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다. 전체주의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동철 의원의 7년 전 법안이 폐기되었던 것인데, 이제 180석에 달하는 큰 몸집을 믿고 7년 묵은 독초를 다시 물에 불려 나물처럼 내 놓은 것이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이 아니듯이, 사회적 상식과 합의에 반하는 불쾌한 주장이라고 하여 모두 형사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이 법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이 오로지 객관적 사실(史實)이라면 모르겠으되, 이 경우엔 보호법익이 주관적 신념(信念)내지 가치판단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법은 모두를 위한 법으로서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국가 중에서 비교적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된 로크리스(Locris)라는 도시 국가가 있었는데, 이 나라에서는 입법 제안을 하는 것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었지만, 함부로 법안을 냈다가 딱히 좋은 호응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교수형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안을 내놓으려는 자는 자기 목에 밧줄을 걸고 나가야 했다고 한다. 법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이리라. 그러나 돌아가는 현상을 보면 당분간 법의 이름을 빈 작폐(作弊)는 계속될 것 같다. 이 작폐의 칼춤에 코가, 아니 목이 온전히 남아 있으려면 확실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을 뿐 아니라 언젠가 써 먹을 밧줄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밧줄이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보여 주어야 그나마 광기어린 입법 폭주에 다소라도 제동이 걸리지 않겠는가.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 펜앤드마이크 출처 명기한 전재 및 재배포는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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