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 시즌 4개 메이저대회 석권… 존스, 유일무이 ‘그랜드슬램’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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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 역사 바꾼 5명의 골퍼 모리스, 코스 설계가의 교과서 호건,‘연습의 화신’으로 유명 자하리스, 女선수로 PGA 출전 우즈, 1997년 마스터스 우승 지난 2009년 미국의 골프전문지 골프매거진은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전 세계 골프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투표를 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 20명을 선정했다. 당시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골퍼는 메이저 최다승인 18승을 따낸 미국의 잭 니클라우스였다. 현역 최고의 골퍼인 타이거 우즈는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누가 최고의 골퍼인지, 그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통산 우승 횟수, 메이저대회 성적, 커리어그랜드슬램 달성 여부 등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양적인 기준 외에도 골프라는 스포츠가 오늘날 같은 모습과 위상을 갖추기까지의 역사적 역할과 기여도로도 골퍼의 위대함을 평가할 수 있다. 근대 골프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에 프로골퍼, 코스설계가, 클럽제작자, 코스관리자 등으로 활약했던 올드 톰 모리스(1821∼1908)가 대표적이다. 모리스는 골프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브리티시오픈(디 오픈)에서 4차례나 우승을 거둘 만큼 뛰어난 골퍼였지만, 모리스의 진정한 위대함은 코스설계와 관리에서 찾을 수 있다. 거의 평생을 몸담았던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 올드코스는 물론 카누스티, 프레스트윅, 뮤어필드 등 그가 만든 코스들은 오늘날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며, 코스설계사들의 교과서가 됐다. 모래를 뿌려 잔디의 생육을 돕는 톱 드레싱이나 해저드의 체계적 관리 등 현대 골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코스 관리 기법의 대부분도 사실상 그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클라우스, 우즈에 이어 가장 위대한 골퍼 순위 3위에 오른 미국의 보비 존스(1902∼1971)는 한 시즌에 4개의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골프 역사상 유일무이한 그랜드슬램 달성자다. 명문 하버드대 출신으로 20대에 골프에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룬 뒤 은퇴한 그는 마스터스 대회를 새롭게 창설해 오늘날 4대 메이저대회의 하나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늘날까지 존스를 위대한 골퍼로 꼽는 이유는 이런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1925년 US오픈에서 존스는 어드레스 중 실수로 공을 살짝 움직였다. 깊은 러프라 공이 움직인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는 스스로 벌타를 부여했다. 이 벌타로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그는 심판이 없고 자신의 스코어마저 직접 기록하는 골프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줬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그의 이름을 딴 ‘밥 존스 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는데, 올해 수상자는 바로 박세리다. 메이저 9승을 포함, PGA투어 통산 64승을 거둔 미국 골퍼 벤 호건(1912∼1997)은 골프의 역사에서 연습의 화신으로 통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자들보다 체구가 작고 타고난 재능도 부족했던 호건은 손가락 뼈가 드러날 정도로 혹독한 연습을 거듭한 끝에 자신만의 스윙을 완성한 후 투어를 석권했다. 호건이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투어에는 지금과 같은 연습 개념이 없었다. 그는 드물게 계획을 세워 매일 규칙적으로 연습한 유일한 골퍼였다. 심지어 우승 직후에도 경기 중 나왔던 자신의 실수를 마음에 들 때까지 연습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정도였다. 호건은 프로골퍼의 세계에 연습의 기준과 문화를 새롭게 만들었다. 미국의 베이브 자하리스(1911∼1956)는 타고난 운동선수였다. 어릴 적 남자애들과 어울려 야구를 즐긴 그녀는 한 경기에서 무려 5개의 홈런을 날려 당시 메이저리그 홈런왕이었던 베이브 루스의 이름을 별명으로 얻었다. 1932년에는 올림픽에 출전해 육상 종목에서 2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땄다. 1935년부터 골프를 시작한 그녀는 여자골퍼가 활약할 무대가 딱히 없었던 탓에 PGA투어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1945년 LA오픈에서 2라운드 컷 통과에 성공한 데 이어, 같은 해 피닉스오픈과 투산오픈에서는 각각 33위와 42위에 올랐다. 이런 그녀의 활약으로 여자골프는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195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가 출범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타이거 우즈는 1997년 2위와 무려 12타 차로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단박에 골프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역동적인 스윙과 도발적인 어퍼컷 세리머니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우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은퇴자들의 레저 정도로 취급받던 골프를 야구와 농구 못지않은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만들었다. 지난해 조조챔피언십 우승으로 1965년 미국의 샘 스니드가 세운 PGA투어 통산 최다승 기록과 타이를 이룬 우즈는 여전히 골프의 새 역사를 쓰는 중이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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