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6-02-17 04:15] 봄의 전령처럼 남녘에서 고로쇠나무의 수액 채취 소식이 들려온다. 고로쇠나무의 수액 채취는 보통 우수 전후에 시작해 곡우 때까지 하지만, 채취량이 가장 많은 시기는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뛰어나온다는 경칩 무렵이다.
고로쇠나무가 많이 자라는 산악지방은 이때쯤이면 일교차가 섭씨 15도 정도 된다. 밤 기온이 영하 3∼5도로 떨어지면 고로쇠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수축한다. 따라서 나무뿌리는 땅속에 있는 수분을 흡수해 줄기로 보내려는 힘을 받고 줄기 속을 수액으로 채운다. 날이 밝아 기온이 영상 10도쯤 되면 햇볕을 받은 나무줄기의 ‘체온’이 올라간다. 이때 수액은 팽창해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사람들은 고로쇠나무의 이런 특성을 활용해 줄기에 상처를 내고, 수액을 채취하는 것이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약알칼리성 생체수로, 색깔이 거의 없고 맛도 담담하다. 수액에는 칼슘, 칼륨, 마그네슘, 나트륨의 미네랄 성분이 일반 물보다 7∼15배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 물론 당분의 일종인 자당도 들어 있어 약간의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수액을 그대로 마시는 우리와 달리 캐나다에서는 사탕단풍나무의 수액을 시럽으로 제조하여 식생활에 이용하고 있다. 같은 단풍나무에 속할지라도 캐나다의 사탕단풍나무가 고로쇠나무보다 3배나 더 많이 자당을 수액 속에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쇠라는 나무 이름은 ‘뼈에 좋은 물, 골리수(骨利水)’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도에 전념한 나머지 무릎을 펼 수 없었던 통일신라시대 승려 도선대사가 고로쇠 수액을 마시고 나서야 무릎을 펼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로쇠나무 수액이 정말로 뼈에 좋은지에 대해서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위장병, 신경통, 고혈압, 산후조리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해 오래전부터 민간요법으로 마셔 왔다. 고로쇠나무의 수액처럼 자작나무의 수액도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서 피로 해소, 체내 노폐물 제거에 효능을 인정받아 건강음료나 무공해음료로 이용되고 있다. 물론 사람에게 좋다고, 과도한 수액 채취로 나무를 골병 들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ychun@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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