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박휘락의 안보백신] 우리의 몫은 이제 백선엽 장군의 유지계승 / 박휘락(정치대학원)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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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국민의 힘” 다부동 전투가 없었다면? 유지의 계승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고(故) 백선엽 장군 영결식에서 영현봉송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백선엽 장군이 7월 15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영면하시게 되셨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 소동과 겹쳐서 황망했으나 대조적인 죽음으로 국민들에게 어필된 점도 있다. 수많은 국민 문상들이 그 증거이다. 일부 호사가들이 과거 친일 행적 등을 거론하면서 흠집을 내려고 했지만, 본인의 공로가 워낙 뚜렷하고, 근거가 별로 없는 비판이라서 국민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였다.
백 장군님의 유지 계승을 언급하기 전에 장례와 관련하여 국민의 힘이 엄청났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백 장군님이 임종의 기미를 보이자 정치권에서는 국립묘지 매장을 허용할 수 없다 했고, 가족장 정도로 치러야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백 장군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들이 분향소를 마련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전 시장의 장례를 턱없이 격상시켰던 정부와 여당도 긴장하게 되었고, 따라서 육군장으로 결정된 것 같다. 나라를 위한 공로를 보면 ‘국장(國葬)’으로 모셔야할 분이지만 국민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도 어려웠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고, 새삼 우리 국민들의 진정성과 힘에 놀라게 된다. 우리나라에 아직 운이 남아있는지 백 장군님은 돌아가시면서도 우와 좌, 공익과 사익, 솔선수범과 표리부동 중에서 어느 것이 우월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박원순 전 시장의 무책임한 자살, 그의 잘못된 행적과 너무나 대조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좌파에서 박원순 시장을 추모하면서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기억할 게 없는 그를 국민들에게 기억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일부 좌파인사들이 백 장군을 폄하하고자 했지만, 기억할 것이 너무 많은 백 장군님을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국민들을 믿었기에 백 장군님이 이 시기에 숨을 거두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노영희 변호사는 7월 13일 MBN의 뉴스 패널로 출연하여 백 장군님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대하여 “6·25 전쟁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쏘아서 이긴 그 공로가 인정된다고 해서 현충원에 묻히냐”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오느냐고 분개해야할 엄청나게 잘못된 말이었다. 그녀는 금방 사과하지도 않았다. 좌파의 막강한 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결국 그녀가 사과한 것은 건전한 우리 국민들의 힘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백 장군님께서는 살아서도 나라를 구했지만, 돌아가시면서도 구국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박원순 시장의 죽음이 미화되었을 수도 있고, 노영희 변호사 같은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부동 전투가 없었다면?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말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전공의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전쟁의 흐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전투에서는 6사단장으로 춘천지역을 방어하여 북괴군의 진격을 지체시켰던 김종오 장군의 공적도 컸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경우에도 기계·안강 지역에서 분전한 한신 장군의 공로도 작지 않다. 그 외에도 수많은 지휘관들이 큰 공로를 세웠기에 북괴군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다. 어찌 지휘관들만 공이 있겠는가? 수많은 군 간부들, 병사들, 노무자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기 때문에 6.25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백 장군님은 100세까지 오래 사셨고, 운 좋게 고위직을 많이 하심에 따라서 그 시대 또는 그 시대 국난극복을 위하여 노력한 분들의 대표로 인식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백 장군이 없었다면 ‘다부재’가 북괴군 수중에 넘어갔고, 그랬다면 대구가 금방 함락되었을 것이며, 그렇게 되었을 경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가 그 지역을 고향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다부동 지역을 너무나 잘 아는데, 그곳은 북쪽에서 대구로 들어가는 가장 결정적인 관문이었다. 사투리로는 ‘따분재’로 불리었던 다부재를 통과하지 않고는 대구로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은 경사를 없애면서 아스팔트 4차선 도로를 깔았지만 필자가 어릴 때인 1970년대까지도 구절양장의 고갯길이었고, 버스가 전복되어 대형사고가 자주 났던 곳이다. 대구에서 20km 북쪽이기 때문에 이 고개만 함락되면 북괴군이 대구까지 무인지경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북괴군이 이 다부재 확보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였을 때 한국군 장병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병력도 모자라고, 전투경험도 별로 없었으며, 북괴군의 공격은 거셌기 때문이다. 이때 분연히 일어나 맨 앞에서 돌진하면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이 당시 30살의 백선엽 사단장이었다. 자신이 두려워 후퇴하거든 나부터 쏘라고 하면서 앞장섰다. 그리고 능통한 영어를 활용하여 미군의 화력지원을 최대한 동원하였다. 역사를 가정할 수 없지만 백선엽 사단장이 아니었으면 다부재와 대구는 함락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미군은 ‘데이비드슨 라인(Davidson Line)’을 준비했는데, 이것은 밀양과 울산을 잇는 선으로서 부산에서 일본으로 철수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어선이었다. 만약 대구가 함락되었으면 미군은 이 데이비드슨 라인을 유효화시키면서 일본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였을 것이고, 일부 한국인들은 일본으로 탈출했겠지만,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백 장군의 공이 적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백 장군의 사망에 즈음하여 미국 정부에서도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가 없었으면 현재의 한국이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유지의 계승 백 장군님은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을까?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북한이 수소폭탄을 개발하여 6.25전쟁 때 실패한 무력적화통일을 재시도하고자 하고 있고, 우리 정부와 우리 군은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분이 어찌 쉽게 눈을 감을 수 있었겠는가? 북한에게 속은 줄도 모른 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다면서 이런 저런 회담을 개최하고 국민들을 속이는 정부를 보면서 애타지 않았겠는가? 북한이 저렇게 험한 말로 조롱해도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오히려 북한의 터무니없는 압력에 굴종하는 정부를 보면서 어찌 숨을 거둘 수 있었겠는가? 한국 안보의 주춧돌이라고 생각하여 본인이 그렇게 가꿔온 한미동맹을 철없이 훼손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겠는가? 우리 모두는 이제 그가 돌아가시기 전에 걱정했던 사항을 해결함으로서 백 장군님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 정부부터 북핵 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 최악의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할 경우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계획을 마련하고, 대비태세를 강구하고, 그 진도를 국민에게 수시로 보고해야 한다. 북핵 위협 상황에서 국가를 안전하게 하는 것을 정부의 최우선 책무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 정부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군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핵 대비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육군장을 무사히 치룬 것을 안도할 것이 아니라 정부 몫까지 담당하여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책을 강구하고, 한미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군대가 부여받은 본연의 임무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 왜 좌파의 눈치를 보는가? 백 장군의 장례식에 참가하여 거수경례로 예의를 표했던 현역의 고위직 장성들은 백 장군님과 같은 확고한 사명감과 사생관을 가진 상태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드는 데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할 것이다. 예비역 군인들도 더욱 분발해야 한다. 백 장군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한 번도 국가안보를 위한 임무와 직책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노력하셨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자성해보자. 전역 후 나라를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가? 골프치고, 등산하고, 정부와 군을 비판만 하면서 보낸 시간이 지나치지 않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각자가 생각해야겠지만, 지금보다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국가안보를 위한 사용하고자 노력하자. 연금값은 해야 할 것 아닌가? 문상해 주신 수많은 국민들께 이 기회를 통하여 개인적인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백 장군의 유지를 받들려면 노력해야할 것이 더욱 많다는 사실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노영희 변호사와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에서 설득력 있는 안보교육을 실시할 것인지 고민해보자. 오늘부터 내 자식, 손자, 그리고 친척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안보관을 심어주고자 노력하고, 효과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안보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여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유도하자.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 가지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자. 좌파와 젊은이들에게 말을 해도 듣지 않겠지만, 이 기회를 통하여 좌파와 젊은이들에게도 당부하고자 한다. 좌파인사들, 이 기회에 본인들이 활동하고 노력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한번 자성해보시라. 본인이 현재 추진하거나 주장하는 바의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시라. 왜 민주화를 주장하고, 왜 반미와 반일을 주장하고, 왜 보수를 비판하는가?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나라를 잘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가, 아니면 그로써 국민들을 선동하여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선배들이 그렇게 했으니까 따라 하는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보면서 깨닫지 못했는가? 박 시장이 남긴 유산이 무엇인가? 나라를 위하여 진정으로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인지 한 가지라도 찾아내보시라. 여러분의 활동과 노력이 여러분들의 자식과 손자들이 살아야할 우리나라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지를 한번 점검해보시라. 젊은이들, 우파들과 나이든 사람들을 무조건 ‘꼰데’라면서 싫어하는 것은 들어서 안다. 팔자를 포함하여 그들이 왜 그렇게 꼰데가 되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좌파들이 나라를 망치려는 것을 막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두면 공산화되는 것이 뻔한 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라는 것인가? 여러분이 좋게 생각했던 박원순과 여러분이 꼰데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백선엽 장군을 비교해보라. 누가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고, 누가 진정 대한민국을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인가? 좌파 및 젊은이들에게 한 가지만 더 묻고자 싶다. 여러분들의 자식에게 어떤 사람을 닮거나 어떤 사람의 인생을 표상으로 삼아 살아가라고 할 것인가? 두 사람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인가, 아니면 백선엽 장군인가? 이 물음에 분명한 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글/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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