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한울아카데미에서 최근 출간된 ‘일본학 총서’는 무려 35명의 국내 일본학 전공자가 필자로 참여했다. ‘일본은 한국에
무엇인가’, ‘21세기 동북아 공동체 형성의 과제와 전망’, ‘글로벌화시대의 일본’ 등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총서는 역사교과서와 독도문제로
경색된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발전적 미래상을 모색한 진지한 연구서다.
이 책에는 한일관계가 국제정치가 곧 내정이었던
냉전시기를 지나 탈냉전기에 접어들면서 내정이 국제정치로 전환되는 역설적 상황에 대한 통찰, 과거사나 독도문제에 대한 양국의 갈등 요인이 일본
측의 무신경·무관심과 한국 측의 감정적 과잉 대응에 있다는 분석 등이 등장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학자들이 참여한 이 책의 중심에는
김영작(65·국제정치·사진) 국민대 명예교수가 숨어 있다. 이 책은 지난해 말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김 교수의 쾌유를 비는 후학들의
애정이 담긴 책이다. 2월 정년퇴직한 김 교수의 정년 기념논총을 대신할 연구기획서로 준비된 이 책은 올해 안 출간을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 김 교수의 폐암 발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후학들이 집필을 서둘러 조기 출간이 이뤄진 것이다.
1권 편집을 맡은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일본 중견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한일관계의 심각성에
눈을 뜨게 만든 것에는 김 교수님의 일본 인맥이 큰 역할을 했다”며 “당시 너무 과로하셨던 것이 발병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여서 후학들의 안타까움이 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의 주된 연구 대상이었던 김옥균을 연상시킬
정도의 풍운아였다. 김 교수는 1960, 70년대 일본 도쿄(東京)대 유학시절 북한 연구를 위해 단독으로 방북해 권부 인사들을 두루 접촉했던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 70년대에 무기징역형을 받고 투옥됐다 5년여 만에 석방됐다. 5공시절엔 민정당 국책연구소 부소장과 12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현실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1985년 이후 학계로 돌아간 그는 학문에 몰두하면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과 현대일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들의 버팀목이 돼 왔다.
올해부터 일본 호세이(法政)대 교수로 근무할 예정이던 김 교수는 현재 서울대병원과 집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이번 3부작은 한일관계에 대한 내 문제인식의 일부이며 기존 저작들을 새로 정리한 또 다른 3부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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