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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가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경실련에 따르면 재산공개 대상자 중 강남권 주택 소유자 438명의 신고액은 총
2910억여원인 데 비해 그 시가는 6026억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가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신고한 것이다. 그래서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신고는 믿을 수 없다는 비난을 받는다.
공직자윤리법은 부동산에 대해 최초 재산등록을 할 때를 기준으로 토지는
개별공시지가로,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은 소득세법에 의한 기준시가를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제4조3항). 한번 신고한 부동산은 거래가 되지
않으면 변동신고를 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니 신고액과 실제 재산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법이 왜 개정되지 않고 있을까.
재산공개 대상인 고위 공직자에 정부 고위 공무원은 물론이고 대통령,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도 포함되니, 자신들에게 적용될 법을 만들거나
고치면서 굳이 시가로 등록하도록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차제에 공직자의 재산공개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이 많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다만 재산을 보유하게 된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사람은 아예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권세나 업무상 알게 되는 내부 정보를 악용하여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따라서 처음 등록할 때 재산 형성 과정의 투명성을 검증하고, 매년 거듭되는 재산공개에서는 변동 사항에 중점을 둬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과 언론은 누가 얼마나 많은 혹은 적은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 하는 숫자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부정직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러니 고위 공직자들은 신고 재산을 줄이지 못해 안달이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히려 양심껏 신고하는 사람은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가 공직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특히 민감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오랜 옛날부터
양반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권력을 통해 부당하게 부를 축적했던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 국민들은 고위 공직자가 재산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부정한
공무원이었을 것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서슬 시퍼렇던 실세 총리도 삼일절에 부적절한 사람들과 골프 쳤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세상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은 아예 고위 공무원이 되려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됐다.
고위 공직자의 재산공개는 본인은 물론, 직계존비속의 재산도 모두 등록하고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가족들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본인의 재산이 아닌 부모 재산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보다 완벽하게 시행하고자 하는 것은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형성과 관련해 시민들이 바라는 윤리 기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문제 있는 재산공개 제도를 연내에 고치겠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재산을
등록하고 공개할 수 있으려면 국민들의 생각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재산이 많은 공무원을 무조건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 재산등록을
누락하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공직자 본인이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은 직계존비속의 재산에 대하여는 소명자료를
바탕으로 공개하지 않도록 보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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