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박휘락 칼럼] 미·중 충돌에 따른 한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 고민해야 / 박휘락(정치대학원) 교수

▲ 박휘락(사진)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권창회 기자


 8월15일 광복절에도 한국은 역사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광화문에서의 시위에서 보듯이 분열과 반목의 국내정치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에 한국의 바깥에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으르렁거리면서 한반도 안보의 지축을 동요시키고 있다.

정부와 우리의 리더들은 국내정치보다 미·중 간의 세력각축에 더욱 높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국가의 생존과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말(韓末)의 조선이 국내정치에 매몰된 채 국제정치의 흐름을 읽지 못함에 따라 국권을 상실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국내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은 지난 7월23일 닉슨 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의 연설에서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자유세계가 공산주의 중국을 바꾸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8월12일에도 중국의 위협이 냉전시대의 소련보다 더욱 심각하면서, 중국이 경제·정치·사회적인 영향력으로 주변국가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 미국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했고, 휴스턴에 있는 중국영사관을 폐쇄했으며, 중국의 '틱톡'(TikTok) 프로그램을 미국 내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고, 중국문화를 전파하는 '공자학원'을 선전단체로 지정해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해군 활동을 증대시켜왔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 일부 섬을 점령하는 훈련까지 실시했으며, 공군은 정찰활동을 증대시키면서 폭격기 배치를 늘렸다. 미군은 냉전 이후 불량국가나 테러분자들을 상대해왔던 군사작전 수행 방향을 중국과 같은 군사강대국과의 군사작전 수행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소규모 충돌이 예상하지 않던 대규모 군사충돌로 상황이 갑작스럽게 악화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석학들의 미·중 충돌 예언

실제 미 석학들은 오래전부터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왔다.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매우 저명한 석학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미어세이머(John A. Mearsheimer) 교수는 2001년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이라는 책을 통해 미·중 충돌을 예언했고, 2014년의 증보판에서는 예언을 더욱 강화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분석한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던 미국 하버드대학의 앨리슨(Graham Allison) 교수도 2017년  <전쟁으로 운명지워지다: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회피할 수 있을까(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라는 책을 통해 미·중 양국 간 전쟁의 불가피성을 전망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은 투키디데스(Thucydes)가 기원전 4세기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스파르타가 아테나의 부상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말인데, 미국이 역사상의 스파르타처럼 중국의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전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중 충돌은 한국 안보에 직접 영향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우리의 안보와 너무나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이고, 중국은 한국의 적인 북한과 동맹관계라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 남북한도 연루될 수밖에 없고, 미·중 충돌의 결과에 의해 남한관계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이 직접 전쟁을 하는 대신 남북한으로 하여금 대리전쟁(proxy war)을 수행하도록 사주할 수도 있다.

중국이 북한에 사주하면 북한은 바로 남한을 공격할 것이고, 남한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이 참전하면 어쩔 수 없이 남북한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제3자가 보면 남북한이 미·중 간의 대리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 평가할 것이다. 1950년에 북한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공격한 6·25전쟁도 학자들은 미국과 소련·중국 간 대리전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6·25전쟁 때 이미 한번 시도한 적도 있지만 '전 한반도 공산화'라는 '당=군=국가'의 목표를 변경한 적이 없다. 현재 북한은 수소폭탄급의 핵무기를 수십 개 보유한 상태이고, 남한의 현 정부는 북한의 기만적인 '비핵화' 약속에 미련을 가진 채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낮췄을 뿐만 아니라 굴종적인 태도로 만만하게 보이고 말았다. 중국이 조금만 부추기면 북한은 바로 남한을 공격할 것인데,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겐소(Hans J. Morgenthau)라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가 핵보유국이 핵공격을 감행하면 비핵보유국은 항복하거나 핵공격을 받아서 초토화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였듯이, 한국이 아무리 많은 재래식 무기로 반격해도 북한의 핵공격보다 더욱 심한 피해를 끼칠 수는 없다.

6·25 전쟁이 동서 진영 간 대리전쟁이라면 현재 남북한은 그의 휴전상태(armistice)이기 때문에 대리전쟁 상황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한반도의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중차대한 일이고, 이에 대한 효과적 대응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없다.

한국이 모든 지혜를 총집결하여 대응한다고 해도 미·중 충돌의 상황에서 우리의 국익을 수호하기가 어려울 것인데, 이렇게 과거사와 국내정치에 매몰되어서야 되겠는가? 한말에 국내정치에 매몰되어 열강의 먹이로 전락했던 과거를 되풀이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정부에 바란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정상적인 정부라면 미·중 충돌의 가능성을 매우 위중한 사태로 보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서 현 상황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어떤 '대(大)전략'을 선택해야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것인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강구하지 않은 채 "이상 없다"면서 태연하다. 오로지 재집권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필자가 이전에도 정부에 수차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요구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반응이 없어서 힘이 빠지지만, 그래도 국가안보를 위한 책임과 수단을 갖고 있는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는 차원에서 미·중 충돌의 상황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비책을 다시 한번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는 안보 관련 부서 주요 직위자, 국제정치학자, 기타 안보 관련 전문가들을 다양한 기회를 통해 초청하고 허심탄회한 의견을 수렴하라. 아무런 편견 없이 오로지 국가안보를 증진한다는 시각으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야 할 것이고, 그들에게 현실에 입각한 정확한 의견을 가감 없이 개진하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미·중 충돌의 실태와 전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한국이 어떤 '대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인지 판단하라.

둘째, 정부는 '균형외교'는 착각이고, 이미 한국은 한미동맹을 선택했다는 점을 명심하라.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었고, 북한은 중국과 동맹관계이다. 2008년 한국은 중국과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를 맺었지만, 2010년 북한이 한국의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한국의 영토인 연평도에 백주대낮에 포격을 가했을 때 중국은 철저하게 북한 편을 들었다.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John Bolton)의 회고록에 의하면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한국을 병합하기를 바라고 있다. 의도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는 없지만, 성과도 없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한미동맹을 약화시켜서는 곤란하다.

셋째, 일본과 러시아와 관계개선에 더욱 노력하라. 중국이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획책하거나 북한이 한국을 병합하도록 사주할 경우 다른 주변국가들이 허용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적도 없다"는 격언을 상기해 일본과 감정적 대결에서 벗어나 공동안보를 위한 방책을 강구하고, 러시아와도 관계를 개선하여 중국이 북한에 일방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넷째,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실질적 과제는 북핵에 대한 억제 및 방어태세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으로 위협하면 한국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을 강화해 유사시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이 반드시 제공되도록 하고, 이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의 핵잠수함이 동해안에서 일상적으로 대기하도록 하든가,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만으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는 것은 올바른 접근방법이 아니다.

다섯째, 정부는 이러한 위중한 안보상황과 그에 대한 대응책을 국민에게 수시로 정확하게 보고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그의 공복(公僕)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위중한 일은 당연히 국민들에게 철저하게 보고되어야 하고, 잘못되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부의 힘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총력방어 차원에서 동참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誰安忘戰必危)

안중근 의사의 글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중국의 병서인 '사마법'에 의하면 "천하가 비록 편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위험하다"라고 했다. 그런데 천하는 이렇게 불안하고 동요하고 있는데 현 정부가 전쟁을 잊은 것 같으니 불안하지 않겠는가? 미·중 충돌과 같은 엄청난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국가의 '대전략'이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아서 어떻게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인가? 이러니 국민은 어찌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정권은 5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수천년이 넘고 미래에는 더욱 길게 영속되어야 한다. 정부는 정권의 시각이나 이해에서 벗어나 우리 국가와 민족의 영속과 번영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라. 겨우 120-130년 전에 대전략 없이 표류하다가 국권을 빼앗긴 한말의 역사를 목도했으면서도 그때와 거의 다르지 않게 국내정치에만 매몰되어서야 되겠는가?

 

원문보기: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0/08/18/2020081800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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