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폭력정치' 이제 그만 / 조중빈 (정외)교수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지난 20일 저녁 전해진 유세장 테러사태는 우리를 경악에 휩싸이게 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며,사건이 터진 다음 우리는 정상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인지,앞으로 우리의 정치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착잡하다.

범행 동기와 주체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은 때로는 보호막을 펴며,때로는 기회를 잡으려 촉수를 내밀고 있다.

범행은 개인이 저지르지만 칼날을 휘두르는 손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적인 문제든 공적인 문제든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폭력 중의 폭력은 독재자의 폭력이다.

백주에 사람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거나 공공연하게 고문을 자행하던 독재체제에 피와 눈물로 항거해 생명을 찾았고 자유를 찾았다.

그런데 그 후 소위 '문민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 생명이 위협 받을 적에도 절제하던 폭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폭력이 일반적 의사표시 방법이 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발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을 보고 놀라지 않게 된 것이 놀라운 일이고,무관심해진 것은 더욱 문제다.

그래서 매 맞는 경찰,군대가 과연 사회의 질서와 국가의 안녕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더 직접적인 요인이 있다.

칼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칼은 한 사람을 해치지만 말의 폭력은 수 천,수 만을 죽인다.

요사이 정치가들이 하는 말은 대화가 아니다.

협박이다.

세금이 '폭탄'이 되고,특정지역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등,평상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가 매우 힘들게 됐다.

천국이 아니라 인간세상이라 정치가 있는 것이고,정치를 하자면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가 갈등을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정치는 종국에 가서 그 갈등을 조절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논리적으로,현실적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뺄셈정치'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갈등의 조절이 아니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 체질이 된 것처럼 보인다.

삶을 투쟁의 장으로 만들고,인격을 황폐화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 돼버렸다.

이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고,막연한 불만에 싸이게 된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쉽사리 희생양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분위기이다.

더 가까이에서 작용하는 요인이 있다.

정치를 투쟁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교조화됐다고 할 정도로 단단해진 이념과 이론이다.

이념이 단단해 지면 사람이 느끼지를 못한다.

가난을 '느끼지' 못하고 분석하게 되며,피를 부르는 폭력 앞에 '질겁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냉소하게 된다.

지방선거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박근혜 대표에 대한 테러행위가 유권자들의 선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정치가나 정치분석가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후보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고,누가 패배하느냐가 아니다.

그것도 아직 범행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폭력행위에 '폭탄'을 맞아 지방선거가 바람에 흔들리거나 냉소와 무관심의 희생이 되면 안 된다.

정치가와 요인들에게 경호원을 붙이는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국민이 지방선거를 통해 다음의 두 가지를 확인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첫째는 지방선거가 내 삶을 지근에서 책임질 사람을 뽑는 것이라는 것,둘째는 폭력은 불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싸움붙이는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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