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글로벌포커스] 벨라루스를 보면 北이 보인다 /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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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벨라루스는 머나먼 나라지만,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에 끼어 있는 인구 950만명의 이 소국에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26년간 벨라루스를 철권통치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정권은 체포 등을 통해 야권 후보들을 모두 배제한 가운데 8월 9일 대선을 실시했는데, 루카셴코가 81%를 득표했다고 발표됐다. 국민은 즉각적으로 부정선거에 반발했고, 8월 10일부터 수십만 명의 시위 군중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의 참혹한 진압으로 사망자까지 생겼지만, 시위대의 의지는 전혀 약해지지 않고 있다. 민중의 분노는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벨라루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러시아의 입장이다. 루카셴코 정권은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후한 지원을 받아왔다. 러시아에 벨라루스만큼 전략적 가치가 많은 나라가 없는데, 벨라루스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방국가들과 대립 중인 러시아는 이곳에서 반러 정권이 생기는 것을 꿈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러시아 고관들은 이를 분명히 암시했다. 반정부 세력은 이것을 잘 알고, 러시아와의 동맹 유지를 많이 강조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서방국가들은 이번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다. 민주화 운동을 많이 옹호하는 서방 정치세력들도 이번 벨라루스 시위에 대해서는 그저 말로만 지원과 연대를 표시할 뿐이다. 이 나라가 러시아의 뒷마당이기 때문에, 반러 운동을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루카셴코를 포기할 수도 있고 구조할 수도 있다. 가능성이 제일 높은 시나리오는 먼저 루카셴코를 도와주고 국내 정세를 안정시킨 다음에, 얼마 후 민심을 잃어버린 독재자를 조용하게 없애고, 러시아에 위험하지 않은 새로운 후보를 벨라루스의 통치자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든지, 외부 세계는 말로는 러시아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겠지만, 이곳에 실제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자신의 뒷마당을 마음대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묵인된 것이다. 벨라루스의 오늘은, 북한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갈수록 격해지는 미·중 대립 속에서 중국은 북한을 중요한 완충지대, 즉 자신의 뒷마당으로 보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물론 세계에서 민중을 가장 엄격히 감시, 통제하는 북한에서 갑자기 봉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올해 초까지 벨라루스도 매우 안정돼 보였다. 북한에서 민중봉기 혹은 쿠데타 시도 등으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할 경우 베이징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미·중 대립의 본격화 이전까지 중국은 미국, 남한과 일정한 타협을 이루고 북한 체제의 붕괴를 용인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바뀌었다. 협력과 타협 대신에 대립과 경쟁의 시대가 돌아왔고, 현실정치 및 세력권 논리가 다시 대두하고 있다. 새로운 상황에서 중국은 위기가 온다면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무조건 지키려 할 것이다. 상식과 달리, 냉전시대는 매우 안정된 시대였다. 어느 나라에서 혁명이나 민중 운동이 발발했을 때, 이 나라가 속한 진영의 패권국가는 정권교체를 차단하거나 통제했다. 공산정권에 도전한 봉기 대부분은 1968년 체코처럼 실패로 끝났다. 자본주의 진영 국가에서도 극좌세력이 대두한다면 비슷한 일이 생겼다. 다른 진영 국가들은 이들 운동에 공감했지만, 국제 사회의 혼란을 유발하기를 원치 않아서 민중에 대한 진압에 눈을 감았다. 오늘날 미·중 대결을 비롯한 새로운 국제 대립은 `냉전2.0`을 야기하고 있어서, 옛날 냉전시대처럼 민중 운동이 성공하기는 다시 어려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대국 대립의 시대에 약소국의 자기 결정권은 다시 작아지고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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