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승정원 일기를 읽는다] 9. 영조와 신하의 갈등 / 이근호 (국사) 연구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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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년(영조 29) 7월27일 오후 창경궁. 진노한 국왕이 집서문으로 들어섰다.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대비전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 뒤를 당황한 표정으로 승지와 사관이 따랐다. 승지 등은 국왕을 뒤따르며 원래 있던 함인정으로 돌아갈 것을 계속 종용하였다.
1694년(숙종 20)에 태어나 갖은 어려움 끝에 왕위에 오른 영조였기에 이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한 일은 의외이다. 왜 그랬을까?
신하들의 요구에 못 이겨 다시 함인정으로 돌아온 영조는 마침내 속마음을 드러냈다. 집서문으로 향하기 전 영조는 신하들에게 시로써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며 왕위를 넘기겠다고 하교하였다. 갑작스러운 하교에 당황한 신하들이 그 이유를 물은 즉, 자신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추숭하는 과정에서 신하들이 보여준 태도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었다. 영조는 신하들의 입에서 먼저 생모를 추숭하자는 말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끝내는 영조의 입에서 먼저 나왔으며, 영조는 이 점이 서운하였다.
놀란 신하들은 관을 벗고 마당에서 대죄하였다. 영조는 이를 개의치 않고 대비전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소리쳤다. 신하들이 이를 받들 수 없다고 하자, 영조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조선은 양반들의 나라이니 경들이 알아서 하면 될 것이다”고 하였다.
영조는 신하들이 자신뿐 아니고 자신의 생모를 우습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는 궁궐 나인 가운데서도 가장 천한 무수리 신분이었으나, 숙종의 눈에 띄어 후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평소 생모의 이런 점을 콤플렉스로 가지고 있던 영조로서 쉽게 가질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이날의 해프닝은 결국 국왕의 의도대로 추숭을 위한 임시관청을 설치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추숭 의식 때 죽책문(竹冊文)과 은인(銀印)을 올려야 하였다. 영조는 대제학 조관빈(1691∼1757)에게 죽책문을 지어 올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조관빈이 이를 거부하였다. 책문(冊文)은 대개 승통(承統)한 왕비나 세자빈에게 올리는 것으로, 숙빈의 경우는 작성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조관빈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영조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일이었다. 마침내 영조는 조관빈을 비난하며 “대신들은 마땅히 그를 역적으로 처벌할 것을 청하여야 한다” “조관빈을 강원도 삼척으로 유배 보내라” 등 숨 가쁘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뒤 안정을 찾은 영조는 재위 30년이 지났는데 생모를 추숭하지 못한 것이 통탄스럽다고 하며 외가의 3대가 영의정으로 추증되어 양반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외가를 우습게 보는 신하들을 질책하였다. 그리고는 좌의정 이천보로 하여금 죽책문을 짓게 하였다. 같은 해 8월5일과 6일 육상궁에 거둥하여 고유제와 친제를 행함으로써 영조의 생모에 대한 추숭작업은 일단락되었다.
조선은 왕조국가이었다. 왕조국가의 최고 권력자는 국왕이다. 그러나 조선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같은 왕조국가인 중국과는 달리 실제 국왕의 권위나 정치력은 개인적 역량이나 처해진 정치 환경 등에 따라 달랐다.
또한 신하들 가운데 일부는 성리학적 이상정치의 실현을 위해 이상으로 생각하는 중국의 요·순과 같은 군주상을 당대 국왕들에게 요구하였다. 국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주장은 왕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왕권과 신권의 대립양상이 드러났다.
왕권이 강했다는 영조의 경우도 이런 일이 자주 있어 영조는 자주 “답답(沓沓)”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오늘날 사용하는 “답답하다”라는 표현의 한자씩 표현이다. 또한 신하들에 대해 “야속(野俗)하다”는 말도 자주 사용하였다. 위의 사례처럼 극단적인 갈등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승정원일기’는 실록과는 달리 이처럼 국왕들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근호 국민대학교 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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