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테마진단] 盧대통령의 잘못된 역발상 / 김형준(정치대학원)교수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기습적으로 4년 연임제 개헌을 들고 나왔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조정하면서 현행 4년의 국회의원과 임기를 맞출 것을 제안했다.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개정한다면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갑작스럽게 개헌을 제안했지만 결코 어떤 정략적인 의도는 없다고 강변했다.

개헌의 필요성과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시기와 방법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헌법은 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국가와 공동체의 기본 규범이자 시대정신과 가치가 제도화된 틀"이다.

따라서 개헌은 대선에 임박해 사회적 담론 없이 '깜짝쇼식 충격요법'으로 불쑥 던질 수 있는 그렇게 가벼운 과제가 아니다.

더구나 한나라당과 유력 대권후보들이 반대하고, 야당이 국회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개헌을 제기했다는 것은 지극히 정략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다목적용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선거 구도를 바꾸기 위한 시도다.

현재 선거 구도는 역대 대선 때와는 달리 여당은 없고 야당만 있는 특이한 구도다.

이 구도를 빨리 깨지 못하면 여당에 결코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작동한 것 같다.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방향성을 잃어 가고 있는 여당을 개헌 이슈로 결집해 야당과의 대립 구도를 복원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야권이 선점하고 있는 경제와 안보 이슈를 개헌 이슈로 전환해 여당 복원의 시간을 벌기 위한 의도가 있다.

셋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끝까지 유지해 역대 대통령과 달리 결코 식물 대통령은 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여권발 정계 개편에 찬물을 끼얹고 스스로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정치권이 개헌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2, 제3의 충격요법을 쓸 수 있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과연 임기말에 노 대통령이 추진한 역발상의 정치는 성공할 수 있을까.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와 야당, 더 나아가 유력한 대권후보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어느 조건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제안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개연성이 크다.

대통령의 권력이 최정점에 있을 때 표출된 재신임 발언과 대연정 제안도 3개월을 끌지 못했다.

하물며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안한 개헌 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여하튼 노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 개헌이 과연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음미해 봐야 한다.

또한 정략적인 차원에서 하는 개헌 이 아니라면 이를 온몸으로 입증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계 개편 불개입을 선언하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서라도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대선을 역사상 가장 중립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약속을 국민에게 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이 갖고 있는 기득권은 철저히 유지하면서 정치권에 개헌을 주문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4년 연임제나 5년 단임제나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성과를 달리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실패를 5년 단임제라는 제도와 여소야대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국정 운영의 성공 여부는 제도와 상황보다 통치 능력이 우선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집권 8년 중 6년 동안 여소야대 상황을 겪었지만 대통령 취임 직후보다는 퇴임 직전 지지도가 높은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정파적이 아니라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노 대통령이 진정 국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국가 지도자라면 제도 만능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아마도 국론 분열과 정국 혼란만을 가져올 개헌 발의가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일을 벌리지 말고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라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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