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3·1절을 다시 본다-대담:3·1정신과 한·일관계 전망

이태진(오른쪽) 서울대 인문대학장과 한상일 국민대 교수가 25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3·1정신과 새로운 한·일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여든아홉돌을 맞는 3·1절이다. 특히 이번 3·1절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 그 어느 때보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맞게 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일본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가져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탰다. 4월엔 이 대통령의 방일까지 잡혀 있다. 새로운 한·일관계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을까. 또 3·1독립운동의 정신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태진(65·국사학과) 서울대 인문대학장과 한상일(65·정치외교학과) 국민대 교수가 지난 25일 문화일보 7층 회의실에서 이에 대해 기탄없이 의견을 나눴다.

■ 참석자

이 태 진 서울대 인문대학장

한 상 일 국민대 교수

진행·정리 = 김영번 문화부차장

3·1 독립선언서

이태진(이하 이) = 우선 3·1독립선언서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국제조약 관계를 공부한 뒤에 독립선언서를 보니까 이게 보통 선언문이 아닌거예요. 담고 있는 의미가 매우 함축적인 데다가 향후 역사방향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하이(上海)임시정부의 역사관과 광복의 기본정신을 밝히고 있을 뿐더러 오늘날 시점에서도 그 의미와 유효성이 여전히 살아 있어요. 마치 1945년 유엔 창설 이후의 국가간 관계를 예고한 듯한 느낌도 듭니다. 독립선언서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회복이 자연법 사상에 기초한 당위성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어요. 실정법을 넘어서는 고유한 권한이라는 것이지요. 이 같은 자연법 사상은 국제법에서도 중요한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인류 공동생존의 평화적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피력함으로써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상일(이하 한) = 그렇습니다. 3·1운동이 갖고 있는 자주·자립·국제평화협조의 정신은 1919년뿐 아니라 오늘날 국제사회에서도 통용되는 것이지요.

이 = 학교 다닐 때는 독립선언서를 엄밀히 검토할 기회가 없었지만 최근 다시 읽어보니 엄청난 민족적 혼과 국제성을 담고 있어요. 새삼 놀랐습니다. 독립선언서를 보면 당시 우리 민족이 물리적으로는 피압박 상태였지만 정신적으로는 미래, 즉 오늘의 승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단초와 함께 우리 민족이 가야 할 방향을 적시하는 선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당시가) 고난의 역사였지만 당당한 역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 당시 분들은 국제정세에도 정통했어요.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연합국과 동맹국 간 평화 조약을 협의하기 위해 개최한 국제 회의)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14개조 평화원칙 등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도 정확히 알고 있었지요. 독립선언서는 그 같은 정세인식의 바탕 위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이 = 맞습니다.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한 김규식을 통해 제시한 우리의 요구엔 일제 조선점령의 불법성이 명확하게 적시돼 있어요.

과거사 인식

한 = 3·1독립선언의 정신을 살려 한·일관계를 풀어나간다면 잘 될 것 같은데, 비약일까요.

이 = 가능할 것입니다. 단, 일본이 바뀐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3·1독립선언의 정신은) 각국이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공동번영하자는 것인데, 사실 한·일은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는 관계예요. 문제는 일본이 과거 자신들이 취했던 강권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한 =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40여년이 흐르면서 양국 관계는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풍파와 갈등도 많았지요. 그 원인이 정치·경제적인 문제 보다는 일본측 망언이나 교과서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안부, 독도 문제 등 주로 역사적 문제가 발단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양국 관계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해 왔지요. 또 (갈등의) 시작은 항상 일본측에서 비롯됐습니다. 때문에 과거사 문제를 짚지 않고 넘어가서는 갈등이 해결될 수 없습니다. 3·1독립선언의 자주·자립·평화협조의 정신이 관철되기 위해선 과거사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선결과제인 셈이지요. 또 한·일관계가 원만해야 중·일관계도 잘 풀려나가 동아시아 전반적으로 안정이 정착될 것입니다.

이 = 동의합니다. 사실 한·일관계의 정상화엔 동아시아의 안정을 추구하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습니다. 북한이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자 이렇게 하다가는 한국이 위협받겠다고 판단한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일 국교재개를 압박했지요. 문제는 한·일 협정에서 해결 못 본 것이 있는데 청구금액의 과다가 아니라 역사인식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소위 청구금의 성격규정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측에선 이를 배상금으로 해석했고, 일본측에선 독립축하금으로 규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인식은 바뀌지 않았어요.

한 = 그렇습니다. 기본조약상엔 경제지원금으로만 돼 있지, 일제 강점 36년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어요. 지금까지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도 여기에 기인하는 겁니다. 조약을 수정하기 위해선 국회 결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1995년 ‘무라야마 담화’(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총리가 태평양 전쟁과 전쟁 이전에 일본이 행한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가 과거의 잘못을 처음으로 시인했지요. 하지만 이때도 일본 의회에선 보수적인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일본 의회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이 = 일본의 경우 사회 전체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총리와 전혀 배치되는 발언을 각료들이 공공연히 내뱉지 않습니까. 일본이 국제적으로 대국 노릇을 하기 위해선 국제사회가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잘잘못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말이죠. 단 일부 양심적 일본인들만이 자국에 대해 ‘양심적이지 못하다’며 반성하고 있지요.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제국의 영광’에 대한 믿음이 해체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대국 노릇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를 슬기롭게 풀어나가야겠지요. 한·중·일의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선 유럽공동체(EU)를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는데, 유럽이 EU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철저한 과거사 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이 일본 같았으면 프랑스가 EU에 동의할 리 만무하지요. 결국 동아시아공동체로 가는 열쇠는 일본에 있는 셈입니다.

이 = 맞는 말씀입니다.

李정부의 대일 외교

한 =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오늘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한·일관계에 의욕을 보여 왔습니다. 하지만 너무 의욕을 앞세우면 현실문제에 부닥칠 수도 있습니다. 워낙 감정적인 문제들이 중첩돼 있기 때문이지요. 김영삼 정부도 초기엔 의욕을 보였습니다. 양국 정상이 오가며 제주에서 노타이 차림으로 정상회담을 갖는 등 화기애애 했지요. 하지만 끝은 결국 좋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버르장머리’ 운운하며 분노하기까지 했지요. 일본의 생리를 잘 알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엔 양국관계가 그나마 원만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처음엔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며 의욕을 보였지만 최악의 상황을 맞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과거의 예를 되돌아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한·일관계를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상천외한 대일정책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짚으면서 한·일간 구도를 설정해 나가야 하리라고 봅니다.

이 = 비슷한 생각입니다. 외교관계에선 명분과 실리 모두 중요하지요. 이 대통령의 경우 선진화와 글로벌 코리아,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는데, 실용이란 외교에서 실리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거기에선 명분상 나올 것이 없지요. 한·일관계에서 명분의 기본사항 중 하나는 역사인식문제 입니다. 물론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 같은 명분을 내세우면 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겠지요. 따라서 이 대통령이 “성숙한 한·일관계를 위해 ‘사과하라’ ‘반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며 일부러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던 점은 이해합니다. 한·일간 역사인식문제는 어느 일방의 선언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닙니다. 일본의 여론주도층이 바뀌어야겠지요. 일본이 과거사를 자랑으로 삼는다면 그 이면에 있는 ‘그늘’을 학계에서 계속 알려야 합니다.

한 = 일본의 과거사 인식문제를 계속 이야기하면 뭣하냐는 일부 세태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안하면 일본에서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와 같은 흐름이 더욱 강해지겠지요.

이 = 이 대통령이 대일관계를 좋게 풀어가야 하지만 한·일간 양보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국가 원수로서 대일본 발언에 품위를 갖추고 직설적인 발언을 되도록 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뒷 힘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학술·문화적으로 일본의 논리를 반박할 수 있도록 학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을 부탁하고 싶군요.

한 = 맞습니다. 배일, 반일이 아니라 과거 일본에 대한 연구가 축적돼야 정신적·물리적으로 당당해 질 수 있습니다. 정치·경제적 차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돼야 합니다. 또한 일본과는 분명히 같이 가야 하는 관계지만 한·일관계가 6자회담이나 북·일관계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선 안 됩니다. 한·일관계는 양국 문제뿐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공존 달성의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이 = 3·1운동 당시 한국이 약소국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중립국의 위치를 갖는 것이었지요. 이를 위해선 상대방도 지켜주는 국제법을 준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같은 정신이 3·1독립선언에 반영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국제법의 기본정신에 충실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중국이나 일본은 몸집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몸집 키우기로만 가면 충돌할 수 있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을 가지고 동아시아 안정체제의 중심적 역할을 한다면 미래지향적 역사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 3·1독립선언서를 다시한번 읽어봐야겠군요.(웃음)

zerokim@munhwa.com

◆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

▲1943년 경북 성주 출생 ▲서울대 한국사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사학전공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명예박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 인문대학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한상일 국민대 교수

▲1943년 평남 강서 출생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미국 서든캘리포니아대 정치학 석사, 미국 클레어몬트대 정치학 박사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교수 ▲국민대 사회과학연구소장 및 ‘일본평론’ 발행인 역임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21&aid=0001941560

이전글 [DT 시론] 서비스산업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 / 김현수 (경영) 교수
다음글 [시론] 개성관광 반대는 단견(短見)이다 / 안드래이 란코프 (교양과정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