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일보-삶과 문화] 비소(砒素)가 주는 경고/김대환(관현악 전공) 교수

미 항공우주국(NASA)이 비소를 먹고 사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외계 생명체 관련 중대발표를 예고까지 한 터라 실망하긴 했으나, 독성 비소를 기반으로 한 박테리아의 발견은 놀라운 사건이다.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많은 죄악을 저지른 비소가 밝은 뉴스의 주인공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모차르트는 죽기 얼마 전, 부인 콘스탄체에게 '아쿠아 토파나'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쿠아 토파나는 17세기 이탈리아 여인 토파나가 비소 화합물 용액으로 만든 화장수이다. 주로 남편을 독살하는 용도로 팔렸고, 수백 명이 희생된 뒤 토파나는 사형에 처해졌다. 모차르트의 죽음에 레퀴엠을 주문한 폰 발제그스-투파흐 백작과 살리에리, 프리메이슨 단체가 번갈아 배후로 지목되며 끊임없이 모차르트 타살설이 제기되는 이유는 당시 독살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비소는 특히 서서히 중독시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고 구입도 쉬워 동서양을 막론하고 독살에 자주 이용되었다. 정조(正祖) 독살설이 논쟁 소재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2008년 청나라 광쉬(光緖) 황제의 머리카락과 의복을 분석한 결과 비소 독살로 결론지어 100년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비소는 암살용 외에도 쓰임새가 무척 다양했다. 독성 그대로 살충제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화장품이나 약, 심지어 건강식품으로 오용되었다. 한때 물감이나 초록색 염료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19세기에 초록색 벽지가 크게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벽에서 뿜어 나오는 비소 증기를 흡입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다량의 비소가 검출되어 독살설이 강력히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영국 BBC 방송은 남아있는 각각 다른 해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예를 들어, 그가 장기간 비소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직접 사인이 독살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폴레옹의 건강 악화는 벽지로 인한 비소 중독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벽지로 인해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사망했을지 짐작이 간다.

1815년, 한 화학자가 비소 염료의 유해성을 경고했다. 제조업체들도 유해성을 감지했으나 막대한 이익을 포기할 수 없어 생산을 계속했다. 사람들도 의심은 하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 대가로 건강과 목숨을 잃었다. 그런 점은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수많은 화학물질에서 뿜어 나오는 환경호르몬과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경고를 쉽게 접하지만, 대다수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공산품이나 식품을 제조하는 사람들도 양심이 없거나 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허다하다.

얼마 전, 미국 워너브라더스 등에서 판매한 중국산 캐릭터 유리컵에서 납을 비롯한 중금속이 허용치의 1,000배 이상 검출되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베토벤의 납 중독 원인으로 지목된 납으로 만든 포도주 잔이 21세기에 어린이용 캐릭터 컵으로 다시 나타나다니 말이다. 이처럼 비소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위험요소로 남아있다. SBS 방송은 얼마 전 '물은 생명이다'는 프로그램에서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등지의 비소 오염 우물물과 주민 피해를 다루면서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강원도 계곡들이 폐광의 비소 함유 폐수로 심각하게 오염됐다고 보도했다.

비소나 수은을 화장품이나 매독 치료제 혹은 불로장생의 약으로 사용하다 죽어간 옛사람들을 우리가 안타까워하듯, 후세는 오늘날 우리의 무지와 유해물질 불감증을 딱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12/h20101210210243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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