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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신뢰` 사회의 조건/남유선(사법학전공) 교수

해마다 이맘때면 기초수급자 할머니부터 대기업 회장까지 사랑의 손길로 온정을 보탠다. 하지만 올해는 자선단체들의 성금 유용 및 횡령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부금이 크게 줄고 있다고 한다.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 남짓이고 구세군 자선냄비도 20% 이상 줄었다. 전국재해구호협회도 연평도 돕기 성금으로 5억원밖에 모금하지 못했다고 했다.

금융위기 이후 3년여 만에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하고 일반 소비심리도 살아나고 있는 반면 복지시설 등은 기부금 감소로 한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난방도 못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자선단체의 성금 횡령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야비한 범죄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자주 `신뢰`야말로 거래비용을 줄임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 주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며, `신뢰`에 기반을 둔 예측 가능성은 선진국ㆍ후진국의 구분 척도라고 강조해 왔다. 마찬가지로 예측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경우 또한 드물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남의 연구보고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탈리아 북부가 남부에 비해 월등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사회적 `신뢰`의 축적 결과로 규정한다.

우리는 신뢰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빈번하게 경험해왔다.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정쟁의 격화, 노사갈등, 이익단체 간 대립의 이면에는 모두 `신뢰의 부재`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GDP의 20%에 육박하는 비용이 사회갈등 해소에 소요되는 사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의욕적으로 시도한 자율적 자전거 대여방식인 `양심자전거`가 없어진 사례 등은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예다.

사회적 신뢰의 붕괴를 초래하는 경우 엄중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고무줄 형량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형사사법제도에 보다 정밀하고 합리적인 양형 기준표를 도입한 것은 `신뢰와 예측 가능성의 담보`라는 측면에서 다행이다. 탈리오의 법칙이 오늘날에도 관철되었다면 사회적 불신이나 극악무도한 범죄는 감소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적절하고 진정한 보복이야말로 신뢰사회의 전제조건이며 필수조건이 아닐까.

원문보기 : 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695677&year=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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