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소련을 무너뜨린 진짜 힘 / 안드레이랑코프(교양과정부)


"남들 잘사는데 우리만 가난"

대외교류 통한 지식이 첫째

요즘 남북 관계 토론회에 참석하다 보면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의 대(對)공산주의 정책을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남한 일부 보수파에게는 '레이건 신화'의 매력이 무척 커 보인다.

'레이건 신화'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레이건 대통령이 1980년대 초에 소련에 압박을 가해 결국 소련 붕괴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신화를 믿는 한국 보수파 일부는 남한도 레이건처럼 북한에 압력을 많이 가하면 이북에서도 김정일 독재체제가 곧 무너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레이건 신화'는 사실과 다른 측면도 없지 않다. 1980년대 초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을 지내면서 개혁과 개방을 주도했던 야코블레프는 얼마 전 레이건 정책이 소련 붕괴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주었을까라는 질문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1970~80년대에 소련에서 자라난 필자는 야코블레프의 견해에 동의한다. 뜻밖의 성공에 도취된 레이건 행정부 출신 인사들이 자신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람처럼 치장하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소련의 위기와 몰락을 체험해 본 필자는 그들의 의견을 너무 과장된 것으로 생각한다.

레이건 신화의 지지자들도 사실은 '소련의 운명을 정한 것은 경제'라고 인정한다. 구소련 치하에서 정치적 권위주의나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근본 이유는 소련의 경제적 무능력, 그리고 어려운 소비 생활이었다. 1960년대부터 소련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수준이 선진국에 크게 뒤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련 정부 산하 통계국에 의하면 소련의 경제성장률은 1971~75년 사이에 7.4%였다가 1976~1980년 4.4%, 1981~85년 3.7%로 급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당시 소련 성장률을 각각 5.4%, 2.6%, 1,8%로 추정했다. 그러나 요즘 공개된 소련 자료들에 따르면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훨씬 더 낮다.

확실한 것은 이 같은 경제 위기가 국가 사회주의에 본래 내재된 모순에 의해 초래된 것이며, 레이건의 당선 훨씬 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연속적인 감소세는 레이건의 압박 정책과 별 상관이 없었다.

한편 당시 소련의 경제와 생활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해도 소련 국민들이 이 사실을 몰랐더라면 경제적인 위기가 정치적인 결과를 초래하진 못했을 것이다. 소련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수준이 선진국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반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련 사람들이 선진국의 생활에 대한 지식을 받는 방법은 주로 두 가지였다. 첫째, 소련 사회 안에서 금기시됐던 사실을 확산하기 위해 서방 선진국이 의도적으로 실시한 정책이 주효했다. 매일 저녁마다 수많은 소련 국민들은 외국의 러시아어 방송을 통해 국내 언론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소식을 듣기 위해서 단파 라디오를 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당시 소련 매체가 그랬던 것처럼 외국 방송 역시 심리전의 일환으로 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고 믿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보다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국제교류를 통한 자연스러운 소문의 확산이었다. 해외에 가본 사람들의 이야기, 외국인과 접해본 경험, 외국 영화나 잡지를 본 인상 등은 선진국의 생활 수준을 잘 확인해 주었다. 선진국에서 수입된 상품이나 시설을 이용해본 소련 국민들은 선진국의 생활 수준을 몸으로 실감했다.

소련의 붕괴를 초래한 것은 압박과 고립정책보다 외부에 대한 지식의 확산을 가능하게 만든 교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이 남한의 대북 정책에 시사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북한 주민들이 넓은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체제의 잘못을 인식하고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201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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