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왕실 친·인척 알면 조선 정치가 보입니다" / 지두환 (국사) 교수

다음 달 중순이면 태조(太祖)부터 순종(純宗)까지 조선시대 역대 왕 27명의 친·인척 계보를 아우른 방대한 저서가 완간된다. 총 52권에 달하는 이 '조선의 왕실' 시리즈(역사문화 간)를 기획·집필한 지두환(56)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사건에 가까운 이번 시리즈 완간의 의미를 이렇게 압축했다. "조선시대 왕실의 친·인척 계보를 추적하는 일은 곧 조선의 정치사를 쓰는 작업이었다."

1998년 작업을 시작, 10년에 걸친 이 과업을 막 완수해낸 지 교수를 14일 오전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왜 이 연구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김수항(金壽恒)은 갑자기 현종 때 승지가 되면서 속된 말로 '고속출세'를 거듭합니다. 그냥 봐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계보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김수항은 현종의 어머니인 효종비 인선왕후와 6촌간이었어요. 측근에 둘 사람이 필요했던 인선왕후가 살아있는 한 그의 지위는 확고했던 거지요."

'○○대왕과 친인척'이란 제목으로 발간된 그의 책들은 제목 그대로 왕의 직계뿐 아니라 처가·외가 그리고 인물 상호 간의 인척관계를 총망라하고 있다. 이를테면 숙종을 다룬 책에서는 인현왕후를 비롯한 그의 세 왕비, 희빈 장씨를 비롯한 그의 후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현왕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는 인현왕후의 부친과 외조부까지 논하는 식이다. "이제 드라마 작가들도 이런 인맥에 대한 정보를 잘 활용한다면 사실(史實)에 가까우면서도 훨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조선전기 국가의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교수의 주된 관심사는 당초 조선시대 사상사였다. 왕실 친·인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민대로 옮겨온 1994년 이후다. "1996년에 그동안 연구해 왔던 인명자료를 총정리하기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날림으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작업을 도와준 제자 이름으로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시리즈물을 내기로 했죠."

500년에 이르는 조선 왕실 친·인척 족보를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왕조 실록, 왕실 족보, 각 문중 족보는 물론이고 해당 인물들의 비문(碑文)까지 다 뒤졌다. 자비 출판을 하다 보니 당장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지방 내려가서 족보 한 권 복사해 오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았지요. 책 한 권 내는 데 인건비 빼고 1000만원은 족히 들었을 걸요."

그러나 학자로서의 직업의식은 경제적 난관마저도 뛰어넘었다. 지난해 10월, 태조부터 제17대 효종까지를 다룬 총 36권의 책이 발간됐다. "왕실 연구를 하려면 데이트도 왕릉에서 하라"는 스승의 '명'을 군말 없이 따라와준 제자들도 그동안 왕실 친·인척 계보 연구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다. 스승으로서는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 "10년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니 날아갈 듯합니다. 앞으로는 조선의 주역(周易) 연구에 몰두하고 싶어요. 다시 사상사로 돌아가야지요."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14/20090114018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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