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변호사 시험과 시장개방 / 이호선 (법) 교수

법무부가 제출한 변호사시험법안이 여당에 의해 부결된 뒤 국회에 법조인력양성 특별 소위가 가동되어 이를 둘러싼 법안 수정작업이 한창이다. 변호사시험에 로스쿨 출신만 응시자격을 줄 것인지, 아니면 로스쿨 졸업생이 아니더라도 응시기회는 주어야 하는지가 논점이다. 로스쿨 운영 대학, 법무부, 교육과학기술부는 전자의 입장이다. 법학부 전공을 둔 대학과 웬만한 중산층이 아니고선 법조인 관문의 원천 봉쇄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쪽에서는 후자의 입장이다.

법제처장이 변호사시험 응시자격 제한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할 만큼 정부·여당 내 의견도 갈리고 있다. 우리가 모범 사례로 삼은 미국 일본 등도 변호사 자격시험을 '일정한 학교' 졸업생들만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지 않는다. 혹자는 의사자격시험에 빗대어 의학전문대학원 등 소정 과정을 마친 자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의술은 수술 등 다양한 임상경험을 위해 특수한 시설과 환경이 필요하나 법률교육은 교과서와 칠판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본질적 차이를 무시한 궤변이다. 현재 우리 법조인 중 로스쿨 출신이라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것은 아니다.

자격제한을 고집하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로스쿨에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경제적 약자에 대한 기회가 보장되어 있다. 둘째, 예비시험을 두면 로스쿨 제도의 취지가 몰각되고 근간이 파괴될 수 있다. 셋째, 학부의 법학 전공자에겐 로스쿨 진학의 기회가 있는 만큼 별도 시험 기회가 필요 없다. 여기에 3년 동안 엄청난 비용을 로스쿨에 쏟아 부은 학생들을 실업자로 만들 수 없으니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80% 이상 보장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응시인원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첫 번째 주장은 로스쿨에서의 '3년'이란 시간을 비용개념으로 인식하지 않는 무지한 발상이다. 장학금을 받아도 생활비를 감당 못하거나, 예컨대 시급히 가족을 부양해야 할 사람은 그 '3년'의 덫에 걸려 법조인 되기를 애당초 포기해야만 한다. 그나마 최소한의 재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형평의 기회박탈의 원죄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로스쿨이 언제까지 장학금을 유지할지도 의문이다. 국가가 강제할 성질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굳이 장학금 규모를 유지하려면 재학생의 등록금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고 이는 다시 그 문턱을 높이는 악순환을 만들어 결국 로스쿨 학생들의 불합리한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두 번째 주장은 예비시험의 성격을 오해 한 것이다. 사법시험 폐지 시점부터 로스쿨 졸업정원의 일정비율(10∼20%)에 연동시키는 예비시험은 로스쿨 제도를 보완하면서 법조인력의 중복, 과잉 공급 우려도 불식시킨다. 세 번째 주장의 경우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예비시험을 통한 객관적 실력검증이 충분한 학생들에게조차 로스쿨 과정 이수를 강제한다는 말인데, 이는 국가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불합리한 이중부담을 지우는 횡포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역시 설득력이 없다.

어차피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과 맞물린 법률시장 개방 일정에 비춰 볼 때 법조인 양성의 통로는 우리끼리 결정한다고 될 성질은 아니다. 다른 문을 통한 변호사들이 시장에 쏟아지는 상황에서 변호사시험 응시 신분 제한은 일반 국민에 대한 역차별 문제만 야기할 것이다. 고비용 신분제로서의 변호사시험제도의 고집은 탐욕 아니면 무지의 소산이다. 그 대가는 젊은이들의 꿈의 박탈이요, 정의와 형평의 말살이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5&aid=000035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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