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일보-삶과 문화/8월 22일]미스터 첼로/김대환(관현악 전공) 교수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꾸중을 듣던 학생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나는 말없이 휴지를 건네는데 행여 얼굴을 먼저 닦는 학생이 있으면 "네 얼굴은 상관없지만 악기가 눈물로 얼룩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악기 먼저 닦으라고 또 꾸짖는다. 서운한 눈빛의 아이들에게 나는 이 악기는 네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 계속 사용할 것이니 마음대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알아줄지는 모르겠다.

현악기, 특히 오래된 현악기는 어린아이처럼 다뤄야 하는 예민한 존재이다. 나무로 만들었으니 습도와 온도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긴 장마 뒤 악기점에 들르면 어김없이 사건ㆍ사고 소식을 듣는다. 비에 젖은 케이스를 충분히 말리지 않았거나 야외 음악회에서 땡볕에 노출되어 중상을 입은 경우들이다. 케이스에 들어있더라도 급정거 충격이나 실수로 떨어뜨려 금이 가는 치명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 값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도 소리와 관계된 부위에 살짝 금이라도 가면 값이 절반으로 떨어지니 음악인들은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리허설을 하러 무대로 나가다 전선에 걸린 적이 있는데 본능적으로 양손으로 악기를 든 채 넘어져 옆구리를 많이 쓸린 적이 있다. 그 때 동료들이 뛰어와 하나같이 나보다 악기의 안부를 먼저 물어 황당했지만,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언제가 아이작 스턴이 넘어지는 바람에 악기가 육중한 몸에 깔리고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빗 가렛이 계단에서 미끄러진 일이 있었다. 이때 가렛은 뇌진탕 위기를 면했으나 대신 과다니니가 산산조각 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대부분 음악가들은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웠을 것이다. 데이빗 가렛도 친구를 잃었다며 부서진 악기의 잔해조차 바라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어떤 악기들은 국가원수급 경호를 받는다. 파가니니가 제노바 시청에 기증한 과르네리 델제수 '캐논'은 수천만 달러 보험에 가입하고 수많은 경호원을 대동하고서야 뉴욕 나들이를 했다. 이 악기로 연주를 한 레지나 카터는 햇볕에 노출시키지 말고 세게 연주하지도 말라는 등의 긴 주문사항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연주 전에 제발 악기를 떨어뜨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악기의 값어치를 떠나 학생이나 연주자들에게 악기는 벤게로프의 표현처럼 애인 같은 존재다. 그러나 끊임없이 돌봐줘야 하는 이 애인은 장거리 이동 때는 귀찮은 존재로 전락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큰 악기를 들고 좁은 통로를 비집고 다니다 보면 작은 손가방만 들고 있는 승객이, 아니 풀룻 같은 작은 악기를 배낭 속에 넣고 가는 동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모른다.

그 때마다 큰 악기를 메고 힘들어 하는 첼리스트들을 보면서 위안을 느낀다. 대학시절 여자 친구 소개를 부탁하던 남학생들 중에는 악기를 들어주기 힘드니 첼로 전공자는 피해달라는 얄미운 조건을 다는 경우도 있었다.

첼리스트들에게 더욱 슬픈 사실은 항상 '미스터 첼로'라는 이름으로 비행기 표를 한 장 더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식사는커녕 커피 한잔도 안 마시는 '미스터 첼로'는 성인요금을 내는데도 마일리지 적립조차 안 된다. 지금 같은 성수기에 자신보다 비싼 운임을 지불할 유학생이나 연주자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악기를 소중한 동반자로 여기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악기를 승객으로 간주하여 성인요금을 매기는 항공사들의 인식은 씁쓸하다.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ㆍ국민대 교수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08/h2009082202373181920.htm
이전글 [국민일보-문화의 길]평생의 은혜는 그리움/장승헌(무용) 교수
다음글 [헤럴드 경제-세상읽기]승자의 커뮤니케이션/이은형(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