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일보-삶과 문화] 마린스키 극장처럼/김대환(관현악전공)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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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러는 바하(Bach), 베토벤(Beethoven). 브람스(Brahms)를 '독일의 위대한 3B'라고 일컬었다. 뒷날 어느 평론가가 브루크너(Bruckner)를 '네 번째 B'라고 극찬하였다. 만약 브람스가 자신을 브루크너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알았다면 자못 불쾌해 했을 것이다. 당시 음악계는 브람스와 바그너(Wagner)를 앞세워 각각 보수와 진보 깃발아래 나뉘어 '음악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 . . 브루크너는 브람스파의 평론가 한슬릭으로부터 어찌나 혹평을 받았던지 생애 처음으로 프란츠 요제프 황제를 만난 자리에서 소원을 묻자 "한슬릭의 필봉을 꺾어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그의 종교적이며 웅장한 교향곡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청원이 어이없지만, 얼마나 맺힌 것이 많았으면 모처럼 얻은 귀한 자리에서 그런 요청을 했을까 싶다. 브람스는 겸손하고 공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 예로 문화부가 주는 장학금 오디션에서 가난한 외국인 학생 드보르작의 재능을 알아보고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작곡가로서 성공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런 브람스가 브루크너 교향곡의 진가를 몰라보고 "웃음거리"라고 폄하했던 것은 아마 파벌 싸움의 결과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백조의 호수>는 그저 반주 역할을 하던 발레 음악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인 작품이었다. 마린스키 극장은 안무의 실패가 전체 공연의 실패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객관적 판단을 했다. 이에 따라 반대파라고도 볼 수 있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호두까기 인형>의 작곡을 잇따라 의뢰해 초연을 하였다. 또 차이코프스키 추모행사에서 <백조의 호수>를 프티파와 이바노프의 안무로 새로이 탄생시켜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편을 가르지 않는 너른 안목으로 상대방을 끌어안아 더 큰 승자의 기쁨을 누린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은 그 후 모스크바로의 수도 이전과 소련의 붕괴로 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최근 게르기예프의 감독 아래 세계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 발레단을 거느린 극장으로 다시 부활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인 게르기예프는 과거 마린스키 극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스탈린이 금지시켜 사장되었던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을 연주하는 등 정치색을 배제한 다양한 레파토리를 섭렵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정치권에서, 혹은 문화계에서 끊임없이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편가르기를 초월한 마린스키 극장의 지혜가 새삼 부럽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10/h2009103021040981920.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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