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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삶과 문화] 진심의 가치 / 김대환(관현악) 교수

영화 "위대한 침묵"이 입 소문을 타고 조용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필립 그로닝 감독은 16년을 기다린 끝에 카르투치오 수도회의 촬영 허가를 받아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제작했다. 침묵 수행을 하는 수도사들을 엿본 영화에는 제목에 어울리게 2시간 40여분의 상영시간 동안 아주 적은 분량의 대사만 나온다

수도사들은 1주일에 한 번, 산책할 때만 허락된 대화의 시간외에는 말없이 서로 머리를 잘라주고 옷을 재단하며 요리를 한다. 소통을 하는데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소리 없이 눈이 쌓이는 겨울로 시작해 사계절을 돌아 다시 겨울에 끝이 난다. 순환되는 계절의 풍광이 예배와 기도, 책 읽기와 노동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아름다우면서도 무겁다.

대사가 없다 보니 소소한 일상의 소리와 간헐적으로 들리는 수도원의 종소리, 그리고 찬송가에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검소한 삶과 어찌 그리 잘 어울릴까. 그레고리안 성가는 무반주로 남성들이 부르는 가톨릭의 전례 음악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음악이다. 서양 음악의 뿌리인 이 단선율의 성가는 예배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려해진 미사곡들에 밀려 쇠퇴하였다. 그러나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당을 통해 구전되었고 19세기 솔렘 수도사들의 부흥 운동으로 명맥을 잃지 않고 오늘 날에도 남아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 이후 서양 음악은 교회, 왕과 귀족, 신흥 자본가세력, 그리고 대중에 이르기까지 후원자들의 입맛에 따라 계속 장식되어왔다. 낭만주의 음악이 잘 세공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면 그레고리안 성가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라고 할까. 악기 없이 인간의 목소리로만 연주되기 때문에 가장 자연에 가까운 겸손하고 경건한 음악이다.


영화와 광고로 우리에게 친숙한 <짐노페디>의 작곡가 에릭 사티도 그레고리안 성가 기법을 사용했다. 낭만주의의 복잡함과 화려함에 반발하여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한 것이다. 그의 <벡사시옹:번민>이란 곡은 한 페이지 분량이지만 840번을 반복하라고 써 있기 때문에 박자 기호대로 연주하면 13시간 40분이 걸린다. 미니멀리즘의 후배 격인 작곡가 존 케이지가 동료들과 릴레이로 16시간에 걸쳐 이 곡의 초연을 강행하였다. 괴짜였던 사티의 장난이었는지 아니면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대한 항변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연주자와 청중은 반복 수행을 체험 했으리라 짐작된다.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다는 지인의 추천과는 달리 중반 즈음 여러 번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고독하고도 위대한 수행 앞에 내가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주 작은 수행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 1초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CF 감독이나 에피소드를 쉴 틈 없이 짜 넣는 드라마 작가들에게는 느린 리듬으로 반복되는 이 영화의 흥행이 조금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로닝 감독은 스태프와 조명 없이 6개월간 수도원 독방에 머물며 하루 3시간씩 허락된 촬영을 하는 고생을 감수했다고 한다. 수도원 주변의 사계절을 담기 위해 2년을 기다렸다. 사랑하는 절대자를 위해 고난을 자처한 수도사들의 진심과 그 마음에 공감하는 감독의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그는 말의 현란함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진심을 다하는 마음의 가치를 묻고 있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01/h20100108204558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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