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한·일 강제병합 과정 추적서 낸 日정치사 연구자 한상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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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일본의 침략주의를 우선 비판해야 하지만, 망국(亡國)으로 몰고 간 조선의 지배계층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일본정치사 연구자인 한상일(69·사진) 국민대 명예교수가 1905년 을사늑약부터 1910년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한 '1910 일본의 한국병탄'(기파랑)을 냈다. 일본·미국·한국 등 관련 국가들의 외교 사료를 토대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에 따라 서구 열강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꼼꼼하게 짚었다. 한 교수는 "일본은 대륙낭인과 군부·정부가 한 몸을 이뤄 치밀하게 한국병탄 프로젝트를 진행한 반면, 조선의 지배층은 일본의 상황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에 무지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한다. "일제가 '병합(倂合)'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만 봐도,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무라 외무대신의 지시를 받은 구라치 데쓰기치(倉知鐵吉) 외무성 정무국장은 침략을 은폐하기 위해 '합병'이라는 단어를 조어(造語)하기까지 '상당히 고심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 교수는 '병합' 대신 침략적 의미가 있는 '병탄'(倂呑)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상일 교수가 무엇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국론을 수렴해 나라를 통합한 정치세력의 부재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위해 적대관계인 사츠마와 조슈가 연합하고,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대립하면서도 함께 의논해서 나라를 이끌어 간 반면, 조선의 지배층은 친일(親日), 친청(親淸), 친러(親露)파가 갈등할 뿐 국익을 위해 힘을 모으지 못한 게 나라를 빼앗긴 원인이 됐습니다." 작년에 이토 히로부미 100주기를 맞아 일본에서 이토를 문명개화론자로 재조명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토는 조선을 병합할 생각이 없었고 조선을 근대화해서 동양평화를 유지하려 했지만, 시대적 상황이 조선을 식민지로 몰고 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 교수는 "이토는 한국 병탄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해서 점진적으로 병탄을 추진했다"고 했다. 이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고무라 외무대신과 이토 측근 등의 회고를 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한상일 교수는 "이토가 없는 근대일본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역할이 크다"며 "앞으로 이토에 대한 연구서를 펴낼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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