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경향신문-경제와 세상]골드만삭스, 그 신의 손길 비밀/조원희(경제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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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의 꽃이 투자은행이라면, 그중에서 최고의 권좌를 차지하는 회사는 골드만삭스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런 회사를 지난달 사기 혐의로 제소했다. 세인들에게 골드만삭스는 ‘금신’(금융의 신)들이 천상에 모여 세간의 자금시장 흐름을 내려다보는 조직이었다. 이 ‘금신’들은 자금시장에 모인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행동을 미리 내다보고 한 걸음 앞서 움직임으로써 ‘떼돈’을 벌고 있으며 이는 당연한 일로 생각됐다. 그런데 ‘신 중의 신’ 골드만삭스가 파렴치한 사기행각을 펼치다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은 너무 복잡해서 경제 전공자들도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비유를 통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보자. 사기혐의로 추락하는 ‘금융의 신’ 여기, 이런저런 재료를 섞어 만든 만병통치약을 비싸게 팔아 한몫 챙기려는 ‘갑’이 있다고 하자. 갑은 ‘을’이라는 유명 제약회사에 접근, 자신이 선정한 재료를 듬뿍 섞어 을의 명의로 신약을 출시하면 돈 벌 거라고 유혹한다. 동시에 갑은 을이 만들어 파는 약을 먹고 탈나는 사람이 생길 경우 거액의 보험료를 받을 수 있는 계약을 보험사와 체결한다. 유명회사 을은 갑이 선정한 재료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자사 명의 약 때문에 탈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갑이 돈을 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약을 산 사람들은 하나같이 탈이 났고 갑은 떼돈을 벌었다. 을도 약 팔아 꽤 남겼다. 이것이 황당한 소설 같은가? 그렇지 않다. 갑에 헤지펀드 회사인 폴슨앤컴퍼니, 을에 골드만삭스를 대입하면 이 황당한 이야기는 ‘SEC 대 골드만삭스’ 사건과 거의 일치한다. 폴슨앤컴퍼니는 ‘아바쿠스’로 불리는 파생금융상품을 골드만삭스가 개발토록 했고, 이 과정에 깊이 개입했다. 골드만삭스는 이 상품을 독일의 IBK은행 등에 팔았다. 동시에 폴슨앤컴퍼니는 아바쿠스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 떼돈을 벌 수 있는 보험상품(CDS)을 구매했다. 아바쿠스의 가격이 오르면 독일 IBK가 돈을 벌고, 내리면 폴슨앤컴퍼니가 돈을 번다. 골드만삭스는 사정을 알면서도 방관했고, 그 결과 세계 금융위기 이후 폴슨앤컴퍼니는 10억달러 수익, 독일 IBK은행은 10억달러 손실을 봤다. 미국에서 법리상 쟁점은, 골드만삭스가 폴슨앤컴퍼니의 투자전략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했는가다. 아바쿠스의 사실상 개발자 중 하나인 폴슨앤컴퍼니가 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는 사실을 IBK은행이 알았다면 이런 수상한 상품에 투자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골드만삭스가 법률을 위반했는가는 오히려 중요치 않다. 골드만삭스는 법적 판단 이전에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법 이전에 도덕적 파렴치 행위 남의 나라 일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는 이유는, 수 년 전 골드만삭스가 지금은 사라진 (주)진로와 관련해 파렴치한 행동으로 약 1조원을 거둬들인 사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97~98년 부도 직전의 진로는 골드만삭스와 비밀유지협약을 맺고 자문을 하면서 재무·영업비밀을 골드만삭스의 ‘투자금융 부서’에 제공했다. 이를 통해 진로의 자금흐름이 비교적 우량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골드만삭스는 ‘부실채권 부서’를 통해 진로 채권을 액면가의 10~20%에 대량 매집했다. 더욱이 이 채권을 신속히, 비싸게 팔아 이익을 실현할 목적으로 진로를 파산→법정관리→매각으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여론의 공격을 받자 골드만삭스는 ‘투자금융 부서’와 ‘부실채권 부서’ 간에 정보차단벽이 준수되고 있으므로 ‘문제 없다’고 발뺌했다. 한국은 지난 십수 년간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들을 ‘선진 금융’이라며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런 ‘선진 금융기관’이 본고장 미국에서는 사기와 협잡의 대명사로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5061816465&code=99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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