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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삶과문화]여름을 기다리며/김대환(관현악) 교수

이번 여름,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와 함께 하는 음악 특강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난 주에 어떤 식으로 강의를 진행할 것인지 안내할 겸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프리뷰 무대를 갖게 되었다. 단발성인 데다가 이른 오전에 강의가 있어 몇 분밖에 참석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오셔서 놀랐다. 최근 아카데미 강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강의를 듣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특강 관계자의 이야기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클래식 저변 인구가 많이 확대되었구나 싶어 기쁘고 반가웠다.

얼마 전 신한 음악상 심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직원 한 분이 다가왔다. 인사를 건넨 후 10년 전쯤 K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적이 있지 않느냐며 본인이 당시 클라리넷 연주자라 밝혔다. 연주곡목이었던 브람스 심포니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 외우다시피 한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음악회였다. 여름방학 중 연주 준비를 위한 캠프에 동행했던 지휘자 선생님이 매일 10시간이 넘는 연습을 강행하는 학생들 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며 웃으며 불평하셨던 기억도 있다.

그 학생들이 지금은 졸업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주말마다 연습하고 연주 활동을 한다고 한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음악을 향한 무한 사랑이 감동적이다. 클라리넷은 여전히 취미지만 직원들의 정성을 모아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음악인들에게 4년 동안 학비를 지원하는 뜻 깊은 일에 동참하는 그 분을 보며 음악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인가 싶었다.

서양 음악사를 살펴보면 자기 과시를 위해 음악인을 후원한 왕이나 귀족도 있었지만 차이코프스키를 후원했던 폰 메크 부인처럼 평생 작곡가를 만나지 않고 순수한 팬의 마음으로 멀리서 지켜본 이들도 있다. 음악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을지언정 음악 사랑만큼은 남다른 애호가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모여 클래식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베토벤의 악보를 사주던 오스트리아 빈 시민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즐겨 듣는 베토벤의 작품들이 모두 존재했을까. 악보와 음악회 입장권, 그리고 20세기에는 음반을 사는 손길이 모여 많은 음악가를 배출하고 또 음악 작품을 만들었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극한 상황에서도 존재했다. 1차 대전 당시 음악 애호가였던 독일의 한 사령관은 군 복무 중이던 힌데미트의 4중주단에게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현악 4중주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사령관은 물론 연주가들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주 도중 드뷔시의 사망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고 슬픔으로 연주는 중단되었다. 연주가이자 작곡가였던 힌데미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곳에서의 음악은 정치 경계와 증오, 전쟁의 공포를 초월하게 했다. 나는 그 때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음악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 30여 년 넘도록 함께 하느라 미운 정 고운정이 든 나에게 음악 자체를 첫사랑처럼 좋아하고 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과의 만남은 그간 잊고 있던 음악 사랑을 일깨워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지만 정작 음악을 향한 에너지를 얻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 같다.

어쩌면 나보다 더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설레며 여름을 기다린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06/h20100625210710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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