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대북 심리전 재개, 어떻게 할 것인가/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 교수

한국 언론 대부분이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대북 대응조치를 '강경 정책'으로 불렀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스타일은 강경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교류 중단은 개성공단을 포함하지 않으면 북한에 심한 타격이 되지 않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가 천안함 사건을 다뤄도 중국이 대북 제재를 막을 것은 분명하다.

대응조치 중에 북한에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정책은 심리전 재개뿐이라고 생각된다. 쇄국 정치를 정권 유지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는 김정일 정권이 가장 무섭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 지역 내에 해외 소식이 널리 퍼지는 것이다.

북한 세습 독재는 이 세상에 잘사는 사회를 건설할 방법을 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이 주장을 정당성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강성대국' 운운하는 김정일 정권만큼 경제를 망친 정권이 세계에 거의 없다. 김정일 입장에선 북한 민중만은 이 사실을 몰라야 한다.

그런데 북한 주민 눈·귀 가리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과 접경 지역에서 자생(自生)적으로 활발해진 무역, 비공식 교류, 탈북 등에 의해 해외 소식이 북한 내에 많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밀수입된 남한 영화와 연속극은 북한에서 인기가 폭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남한 정부는 북한 민중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활동을 거의 그만두었다. 북한에서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길을 열어줄 방법은 대북 제재도 아니고, 햇볕정책과 같은 일방적인 양보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 특히 남한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정보를 북한 주민들에 알려주는 것이다.

북한을 옳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세력은 북한 민중뿐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그들이 사는 방식과 다른 대안(代案)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그렇다면 대북 심리전 재개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기본 아이디어는 옳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심리전은 전쟁의 한 형태이다. 적군의 전투 의지를 약화시키는 활동이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더 필요한 것은 대북 심리전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객관적이고 다양한 바깥소식을 알려주는 것이다.

확성기 방송은 전선(前線)의 북한 군인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는 괜찮지만 한번 보는 것일 뿐이다. 북한 군인만이 아니라 전 주민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즉각적인 효과보다 근본적인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북한 민중, 특히 지식인들과 중·하급 간부들의 사고방식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라디오 방송이나 북한 민중을 위한 디지털 자료 제작 등이 효율성이 더 높을 것이다.

국군의 심리전 부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들은 군사적 심리전을 할 능력은 있지만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 캠페인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정책은 어떤 때는 중단하고, 또 어떤 때에는 재개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압력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이것은 남북 관계의 긴장 여부와 무관하게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전략이다.

한국 정부는 1960~80년대에 미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미국 공보처와 같은 기구를 검토해 보기 바란다. 이 기관은 진보·보수의 구분을 넘어서 북한 주민들에게 사실을 알려 주는 활동을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활동을 하는 각종 단체를 종합 관리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그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07/20100607027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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