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일보-삶과 문화] '자유로우나 고독한' /김대한(관현악 전공) 교수

20세의 청년 브람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소개로 슈만 부부를 방문했다. 브람스가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자 슈만은 감격하여 그 날 일기에'10월 1일. 브람스 방문. 천재. 클라라도 완벽히 동의함'이라 적었다. 재능 있는 젊은 음악인 브람스를 만난 기쁨에 슈만은 그를 소개해준 요아힘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요아힘의 모토였고 낭만주의 신봉자인 그들이 즐겨 외쳤던'Frei Aber Einsam(자유로운 그러나 고독한)'을 제목으로 한 F.A.E 소나타가 바로 그것이다. 1악장은 슈만의 제자 디트리히가, 2ㆍ4악장은 슈만이, 3악장은 브람스가 작곡하였다. 영화로 치자면 옴니버스 형식을 빌린 셈인데, 음악사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한 일기장에 교대로 글을 남겼던 슈만이기에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 아닌가 싶다.

음악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료이자 선후배였으나 그들의 인연은 완벽한 해피 엔딩은 아니었다. 슈만은 브람스를 만난 이듬해 오래 앓던 정신질환으로 라인 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2년 후, 클라라와 브람스가 병문안을 온 요아힘을 마중하러 기차역으로 간 사이 슈만은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자신을 음악계 중심으로 이끌어주었던 슈만이 병원에 있는 동안, 브람스는 그의 가족을 돌보다 클라라를 마음에 두게 된다.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홀로 번민하다 64세에 독신으로 생을 마감하였으니 브람스의 일생이 바로 'Frei Aber Einsam'이었다.

슈만과 그의 동료들이 세상을 떠난 지 1세기가 훨씬 넘었다. 현대사회는 그들의 모토보다 '더 자유롭고 더 고독한' 사회가 되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재벌 총수나 인기 연예인도 자신만의 불행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크리스토프 루에거는 고도로 발달한 사회의 근본적 불행은'외로움'이라 말한다. 그리고 영혼의 치료제로 음악을 권한다. 저서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음악의 지혜>는 상황에 따라 들으면 좋은 음악을 세분해 놓았다. 예를 들어 아침에 듣기 좋은 음악으로 <비발디의 협주곡>이나 슈베르트의 <들어라 종달새>를, 사랑의 번민에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추천한다. 음악인으로서 처방전처럼 음악을 권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루에거 자신도 서문에서 이러한 분류는 다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며 감기처럼 경미한 증상에 사용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의 표현대로 음악을 자신의 삶에 포함시키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닌 감수성이 풍부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음악이 그렇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저소득층 음악교육'엘 시스테마'는 루에거의 주장을 입증한다. 국제사회가 막대한 자금과 정치력으로 해결하지 못한 마약으로부터 청소년을 떼어내는 일을 음악이 해냈다.

자신의 병을 다스리지 못한 슈만이지만 그가 만든 아름다운 음악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오랜 동안 인고한 작곡가의 혼이 깃든 음악은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우울증과 창작욕이 교차하던 시기에 작곡한 F.A.E. 소나타 2악장 인터메조를 듣고 있자면 애절한 선율에 눈물이 맺히다가도 어느덧 비 내린 뒤의 하늘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우리의 인생은 고독하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 쓸쓸한 길에 음악이라는 변치 않는 동반자가 있으니.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08/h20100806210231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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