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아시아경제]'좀 건방진' 창업자 만들기/김도현(경영학) 교수

아들 친구들이 자신의 꿈을 그린 그림들을 보니 똑같은 꿈을 가진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학교에서 만나는 대학 졸업반 친구들의 꿈은 놀랍게도 '단일화'되어 있습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지요. 스펙을 만들고, 적성시험 대비 학원에 다니고, 면접준비를 하며 모두 똑같은 졸업준비를 합니다. 이력서가 모두 같으니 경쟁은 치열하고, 학생들은 초조감으로 창백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가끔 학생과 단둘이 조용히 앉아 '진짜로' 원하는 일을 물어보면 놀랍게도 다양한 대답을 듣게 됩니다. 영화감독, 교사, 여행가, 아나운서, 동물 조련사…. 그리고 그런 다양한 분야에서 스스로 창업을 해서 사장이 되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꿈 대신 대기업 취업준비를 하느냐고 다시 물으면 그 친구들은 긴 한숨과 함께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켜드리고 싶다고, 남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대답하곤 합니다. 일단 대기업에 취직한 다음, '언젠가는' 원하는 일을 준비하겠다고 우물쭈물 덧붙이면서요. 제 생각에 우리 후배들은, 너무, 착합니다.
 
창업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신선한 에너지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창업자가 등장하고, 기존 기업과는 다른 사업모델과 기술로 시장에 잠재된 수요를 현실화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경제는 앞으로 전진하게 됩니다. 고용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대기업 고용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혁신적인 중소ㆍ중견기업을 만들어낼 창업자는 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양적인 측면으로 창업의 수가 적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약 70만건의 소상공인 창업과 6만건가량의 법인 창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창업자 가운데 20~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벤처기업의 경우에도 대표이사가 20~30대인 경우는 고작 11% 내외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창업이 젊은 친구들에게 외면 받는다면 우리나라는 구글과 애플의 사례를 늘 다른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곤 합니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산업의 뻔한 규칙(Industry recipe)'을 파괴하고 새로운 규칙을 창출하는 것은 젊고 '건방진' 창업자들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그렇게 건방진 친구들이 시장에 많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물론 많은 젊은 창업자들이 때로는 경험 미숙으로, 때로는 윤리적인 문제로, 또 더 많은 경우 고객을 만들지 못해 실패했고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때 '역시 창업은 너무 위험해'라고 쉽게 결론 내렸던 것은, 그래서 후배들과 자식들에게 창업 따윈 관심도 갖지 말고 대기업에 취직하라고 강권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땅에서 넘어졌으니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보라고, 다시 넘어져도 또 일어나보라고 격려해주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제공해줬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지요. 우리가 후배들을 창업에서 눈 돌리게 만드는 사이, 묵묵히 버텨 매출 1000억원을 넘기는 성과를 낸 벤처기업이 250여개나 된다는 걸 생각하면 그런 아쉬움은 더 커지기만 합니다.
 
최근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정부 부처는 청년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대책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학계에서 논의되던 많은 대책이 포함되어 있는 자못 기대되는 방안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정책만으로 젊은 창업이 충분히 늘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무모하게 돌진하는 후배들에게 한번 해보라고, 힘내라고, 그리고 필요하면 도와주겠노라고 어깨 두드려주는 선배들 없이는 말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8261117289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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