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DT 시론] 상생, `어음` 관행부터 개선을/김종민(경제학과) 교수

 요즈음 들려오는 각종 우울한 뉴스들 중 상당 부분은 흔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각종 부적절한 처신 혹은 행위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명백히 불법적인 혹은 비도덕적인 행위임에도 예전부터 내려오던 관행적인 행위였으므로 크게 문제삼기 어렵다고 항변하는 경우를 보아온 게 어디 한 두 해의 일이냔 말이다.

 비록 불법은 아니더라도 보통사람의 상식에 어긋나는 그릇된 거래행위도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버젓이 행해지거나 혹은 강요되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을'의 하소연도 여전하다. 특히 납품대금에 대한 금융결제를 지연하거나, 심지어 수 개월 짜리 어음을 발행하는 등의 만성적인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장관이 대기업들에게 "(부당한 어음거래 관행에 대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질타하는 지경에 이르렀겠느냔 말이다.

 관행이란 다른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하리라고 예상하고 자신도 그렇게 하는 일종의 암묵적 규범 혹은 약속과도 같은 것이다. 관행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인지에 대해 경제학자인 영(HP Young)은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그렇게 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행동하며, 모든 사람들이 결국에는 순응하게 되는 행동양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약자에게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가 아름다운 관행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도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따라서 이에 순응하는 것이 나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는 언뜻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도 있으며, 눈 한번 질끈 감으면 편하게 갈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다른 이들의 질책을 피할 수 없으며, 자리에 앉아있는 내내 따가운 시선에 다리는 편할 지 모르나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편할 수는 없다. 따라서 관행에 순응하는 편이 이롭다. 모든 관행이 이처럼 아름답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항상 옳다는 이유가 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공유되는 모든 암묵적 약속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이를 거스르려는 도전에 늘 직면하게 된다. 일시적 유행은 계기만 마련된다면 새로운 흐름에 묻혀 사라지게 마련이다. 관행이란 바람직하던 그렇지 않던 끊임없는 도전에 살아남을 정도의 강한 생명력을 지닌 동시대의 행동 양식이며, 따라서 이를 타파하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어음 결제 관행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들은 1차 협력업체에 대해 현금결제를 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대기업들은 아직도 수 개월 짜리 어음을 발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금을 지급받은 1차 협력업체가 2차, 3차 협력업체에게 다시 어음을 지급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은 중소기업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 들어 중소 제조업의 평균 어음결제기일은 2분기 기준 122.8일로 지난해 4분기 기준 119.9일보다 오히려 길어졌다고 한다. 이러니 정부의 기업간 상생노력이 중소기업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물론 모든 어음거래가 다 문제가 되지는 않으며, 이를 일시에 없앤다면 상거래 축소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부득이한 경우 어음을 지급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현금을 쌓아두고 협력업체에 수 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하는 행위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거래의 행태는 관행으로 정착되면 바꾸기가 매우 어렵게 되며, 한 두 기업의 노력으로 타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규제당국의 감독과 기업들의 거래관행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기업간의 거래 시 기업구매카드 이용에 따른 인센티브를 도입하여 사용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어음거래의 대체수단으로 고려해 볼만하다. 어려울수록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여야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원문보기 :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009150201235169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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