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겨레]현대건설 매각의 올바른 방향/유지수(기업경영전공) 교수

올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 최고의 대어는 단연 현대건설 매각이다. 지난 1일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과 함께 인수전의 막이 올라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2파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언론에 나오는 광고는 점입가경이다. 현대그룹은 연고권을 주장하는 텔레비전 광고를 비롯해 지난 4일과 18일 중앙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했다. 특정 기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현대건설 인수전의 경쟁상대인 현대차그룹을 겨냥한 광고다. 특히 4일 광고는 현대차그룹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면서 “자동차 강국으로 기억되는 대한민국, 현대그룹이 함께 응원합니다”라는 문구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산업에만 전념하라고 충고까지 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워크아웃 기업에서 10년 만에 국내 1위의 건설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제 현대건설은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해야 한다. 현대건설 매각의 기본 방향은 현대건설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적의 인수기업을 선정하는 데 있다.

기업 인수는 경쟁력 논리가 주도해야 한다. 정치적 파워게임도 아니고 인정에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의 사례를 보자. 능력 없는 인수자가 “인수 의지”만으로 대형기업을 인수하려고 하면 그 엠앤에이는 실패하고 만다. 금호그룹은 재무적 투자자와 불합리한 풋백옵션까지 맺어가면서 대우건설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대우건설은 다시 산업은행 관리하에 들어가고 금호그룹도 법정관리 신세가 되어 ‘승자의 저주’의 희생양이 됐다. 이렇게 된 데는 당시 우선협상자 선정 기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우선협상자 선정 기준 중 가격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7%였다. 인수경영능력을 평가하는 비가격부문에서도 자금조달계획, 재무능력과 경영능력, 발전가능성의 배점은 낮았다. 또 등급평가방식을 도입하여 해당 평가지표에서 최고점을 받은 기업과 최저점을 받은 기업의 점수차가 겨우 0.4점으로 변별력을 상실한 것이다. 경영능력과 육성 의지는 없으면서 ‘인수 의지’만 높은 기업이 가격만 높게 써내면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다른 전형적인 실패 사례가 쌍용차 매각이다. 당시 중국 상하이차의 쌍용자동차 인수 목적은 쌍용차를 육성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술유출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채권단은 인수가격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상하이차의 손을 들어줬다. 자동차 기술이라는 엄청난 국부 유출과 함께, 쌍용차는 다시 법정관리로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말았다.

현대건설 매각에서는 대우건설이나 쌍용차와 같이 실패한 엠앤에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채권단은 과거 엠앤에이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어떤 기업이 지속적으로 현대건설을 육성하여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우선 봐야 한다. 단순히 가격만 갖고 인수자를 정하는 과거 인수자 선정 방식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현대건설 매각이 갖는 국가경제적 의미를 고려해서 확실한 자금능력은 있는지, 지속적인 육성을 위한 투자여력은 있는지, 컨소시엄을 구성한 다른 기업에 무리한 약속은 하고 있지 않은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여론전으로 변질되는 현대건설 인수전, 채권단의 판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때다. 인수 참여자들에게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게임의 룰을 주지시킬 필요성도 있다. 인수 참여자들은 채권단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경영능력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서로를 향해 감정적인 여론몰이형 공격은 철저히 지양돼야 할 것이다. 관심 있게 지켜보는 외신들이 최근 여론전을 보고 우리나라의 엠앤에이 수준을 판단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447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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