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마다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 같은 것이 있습니다. 변호사는 모두 안경을 낀 좀 날카로운 성격일 것 같고, 운동선수는 근육질에 쾌활한 성격일 것 같은. 이와 비슷하게 과학자들은 실험복에 시험관을 들고 있는 실험과학자나 책상에 앉아 혼자 골똘히 뭔가 생각하고 있는 (아마도 아인슈타인 머리스타일의) 이론 과학자를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느낌과 함께요. 그래서 과학자들이 뭔가 사회적인 주장을 한다거나 서명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여 과학자들의 구성도 다양합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분야 등의 기초과학분야를 모두 포함해서 화학공학과 같은 공학분야까지 망라하고 있고, 젊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원로과학자들의 모임인 과학기술한림원이라는 단체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것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라는 숨차게 긴 이름의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라는 것이지요. 이 '벨트'의 시작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2005년 어느 날 핵물리학자와 디자이너가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학과 예술의 창의성이 모두 인접분야와의 융합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수한 과학자와 예술가, 그리고 창의적인 사업가들이 함께 모여 서로 소통하고 융합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진화하고 발전해 '은하도시'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공간계획으로 만들어집니다. 그 '은하도시'에는 과학자들을 끌어당길 중이온가속기와 예술가들을 모이게 할 다양한 예술공간이 자리하고, 과학과 예술의 힘을 활용할 창의적 기업들도 함께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들이 꿈꾼 것은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였고, 복잡성과학을 창출한 미국의 산타페 연구소였고, 지금도 융합이 숨쉬는 프랑스의 꼴레쥐 드 프랑스였습니다.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 '은하도시'를 믿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만나서 그 꿈을 팝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꿈은 이제 법안이 돼 국회에 와 있습니다. 물론 정치현실은 꿈과는 다를 겁니다. 세종시 논란의 한가운데 끼어 있었던 여파도 있고, 지역간의 이해관계조정도 다 해결되지 않았으니 많은 토의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결국 이 법안이 중이온가속기라는 시설을 짓자는 이야기이고, 법안이 통과 안 되어도 가속기만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꿈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또 시설을 하나 짓거나, 과학자들에게 예산을 좀 더 달라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꾼 꿈은 무모할 만큼 용감한 꿈이었지요. 우리 기업들이 지금 바로 필요한 것, 선발기업들을 추격하는 데 성공해 이제 선두가 돼보니 목마르게 필요한 것. 창의적인 지식. 그것을 계속 만들어낼 용광로를 빚어보자는 꿈 말입니다. 과학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당장 밥 먹고 사는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는 데다 어려운 말이 많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번 서명운동은 좀 귀 기울여볼 만한 것 같습니다. 그 주장 안에는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들이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녹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축구 한ㆍ일전에 열광하는 마음의 백분의 일쯤은, 과학분야 노벨상에서 18:0으로 우리가 일본에 지고 있는 이유에 신경 써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102811085416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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