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초단기 자가격리기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택시는 안 됩니다.” 보건소 직원은 단호했다. 코로나19 검사 후 귀가 교통편을 묻기에 택시를 말했다가 돌아온 대답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 택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걸어가거나 자전거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발단은 2주 전 면담한 졸업반 학생이었다. 무증상 감염으로 확진됐으니 검사를 받아보라는 연락이 왔다. 다급한 전화에 달려간 보건소는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길은 추웠다. 육교를 건너야 했고 미군부대 담장을 따라 지루한 길을 한 시간도 넘게 걸었다. 옷은 대충 걸쳤고 전화를 몇 통 거느라 집어 든 전화기 때문에 손은 감각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내내 야외에서 검사를 돕는 분들의 얇은 옷이 떠올라 다시 어깨를 펴고 걸었다.

 

검사 결과는 48시간 이내에 나오지만 그동안은 확진자에 준하는 격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가족을 내보내고 욕실이 딸린 안방을 격리공간으로 정했다. 식사는 비대면으로 전해받았고 가족들과는 문자 메시지로 소통했다. 문 하나 사이에 떨어져 있지만 다른 공간 다른 건물 다른 도시보다 먼 격리의 시간이 시작됐다. 익숙한 일상의 공간이 낯설어졌다.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 사회의 공간 문제에 천착했다. 그의 마지막 저작은 ‘리듬 분석’이다. 장소와 시간의 상호작용이 리듬이며 공간의 시간성과 시간의 공간성을 매개하는 장치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다고 한다. 정태적 공간과 선형의 시간이 아닌 시공간이 인간의 에너지와 결합해 만들어내는 반복과 속도와 강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멈춰버린 시간과 일상이지만 낯설어 보이는 공간에서 리듬은 혼란스럽다.

 

반쯤은 재미로 시작한 자가격리지만 금세 지루해졌다. 우선 넷플릭스는 선택지에서 지웠다. 작년 겨울에 넘어져 팔을 다친 후 무심코 미드를 하나 골랐다가 눈이 벌게지도록 연속해서 서른 편을 완주한 후 다시는 할 일이 아니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TV와 컴퓨터 없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자니 여러 생각이 피어올랐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한다. 생각이 도달한 곳은 양성 판정을 받았을 경우였다.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장은? 외부 회의 일정은? 생각이 미치자 처음의 호기와는 달리 불안해서 열이 나는 듯했다. 목도 칼칼해지는 듯하고 가슴도 답답해지고….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전해진다. 격리공간의 고요함과 격렬한 심란함이 엉킨 채 2주씩 견뎌내는 이들과 확진 후 낯선 공간에서 맞는 절망과 희망은 이보다 열 배는 더할 것이고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두 시간쯤이 지나서야 다시 평온해졌다. 열도 내린 듯하고 기침도 멈췄다. 본격적으로 평온한 상태에서 사색을 해보리라. 온전히 혼자였던 시간이 얼마 만인지 헤아려보니 아득하다. 먼지 덮인 다락방에서 심지어는 서랍 안에서도 공간의 시적 교감을 발견한다는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온 우주가 작고 내밀한 공간에 숨어 있다던데 늘 보던 방과 욕실은 그대로였다. 외려, 지루함을 견디며 묵묵하게 한 장 한 장 타일을 붙였을 노동자의 손길에 오히려 눈이 간다. 타일 작업은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노동 후 그들을 견디게 해준 것은 호프집, 노래방에서 즐기던 일상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일상의 리듬을 빼앗아 간 바이러스가 야속하다.

 

욕실에 앉아 타일 개수를 세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자니 ‘벌써 한 해가 다 갔다’는 뻔한 탄식이 나온다. 연말마다 반복되었지만 예년 같지만은 않다. 정초에 빌어주었던 성취와 보람보다는 염려와 걱정, 대책으로 도망치듯 살아낸 한 해이니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다음 날 아침 선잠을 깨우는 보건소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귀하께서 실시한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음성임을 알려드립니다.” 안방 문을 열어젖히자 아침 해가 동향 거실에 그득하다. 아! 일상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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