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새롭고 고급스러우며 가급적 외국풍으로…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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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가 명칭을 변경하고자 하는데 ‘목동’이라는 지명이 들어가서 이를 구청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행정구역상 목동이 아니니 거부했고, 아파트 주민들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브랜드가 있는 것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전자나 자동차·조선 강국으로 알고 있는 외국인 눈에는 매우 이상한 일이다. 십년쯤 전, 외국인들이 한국 고급 아파트를 재벌 회사 직원들이 사는 사택이나 기숙사로 오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재벌마다 건설사를 가지고 아파트를 지어 팔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그마저도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건설사마다 브랜드를 만들면서 재벌 로고는 사라지고 순수하게 아파트 상표가 생겼다.
경쟁적으로 세련된 느낌을 주려 하다 보니 쓰이는 단어는 외국어 일색이다. 로얄, 캐슬, 파크, 센트럴, 리버, 빌리지, 팰리스, 타워, 하임…. 거기에 두 단어를 합성한 신조어들도 등장한다. ○○빌, ○○파크, ○○스퀘어…. 뜻은 필요 없다. 새롭고 고급스러우며 가급적 외국풍으로….
실제 건물이나 조경의 내용과 연관은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새 브랜드를 만들고 나면 이전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새것을 원한다고 한단다. 외벽 페인트 비용을 부담할 테니 바꿔 달라는 민원에 시달린다고 말하는 건설사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더 씁쓸한 뉴스도 있었다. ‘휴거’ ‘엘사’이다. 초등학생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LH 아파트에 산다는 뜻으로 엘사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휴거는 LH 브랜드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는 뜻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브랜드 효과는 아이들에게도 공고하게 내면화된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대기업이 만든 브랜드에 살게 됐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됐을까. 게다가 그 상표가 공식 주소에도 들어가게 됐을까. 우선, 외국에는 재벌 회사가 만든 아파트 상표라는 것이 아예 없다. 별칭이 있기는 하지만 비공식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명한 아파트인 메트로폴리탄 타워는 별칭일 뿐, 공식 주소는 그냥 W.57가 146번지이다. 우편 주소에도,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도, 등기서류에도 브랜드나 별칭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소스타인 베블런이나 피에르 부르디외의 심오한 소비이론에 기댈 필요도 없다. 소비가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상징이라는 이론은 사회문화적·경제적 계급과 그들의 소비 행동 양식이 일종의 기호라는 게 전제이다. 그에 반해 아파트 브랜드는 매우 직접적이고 거칠게 욕망을 부추기는 상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스스로 행하는 ‘구별 짓기’와 타인을 향한 낙인이 거리낌 없이 일어난다.
예전의 혼란스러운 지번 중심의 주소 체계에서는 아파트 이름이 유용함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큰 비용을 들여 새로 만든 도로명 주소 체계에서는 중복이며 낭비다. ‘○○로 100번지 101동 101호’ 같은 주소로는 부족한가. 안타까운 것은 행정 당국의 태도이다. 얄팍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 낸 브랜드를 주소에 명기해 이를 제도의 영역에서 공식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불안정한 부동산 가격이나 빈부격차 없이 어울려 사는 사회를 향하려면 관이 나서서 바로잡는 것이 옳겠다. 가뜩이나 외국어로 오염돼 가는 우리말을 앞장서서 지켜야 할 주체가 아닌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라는 오래전 아파트 광고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내 공식 주소에 재벌 건설사 이름과 뜻도 맞지 않는 영어가 들어 있기를 원치 않는다. 주소만으로 나의 경제력과 취향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차별받거나 차별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술로 등장한 국적 불명의 외국어 브랜드가 왜 내 주민등록증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나를 말하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건 나뿐인가?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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