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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암기 강요하는 공무원시험 / 윤동호(법학부) 교수

지난 달, 국가공무원 시험이 치러졌다. 시험의 법학 서술형 문제는 출제에 부담이 크지 않고 체계적인 판단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평가에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커 공정성과 객관성에 한계를 안고 있다. 평가자마다 점수 차이가 날 수 있고, 심지어 동일한 평가자일지라도 평가 시점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채점자의 주관을 최소화화기 위해서 다양한 쟁점을 담아 채점기준을 세분화함으로써 마치 선택형 시험의 문제를 모아놓은 듯한 서술형 출제로 가는 경향이다.

 

 선택형 시험은 불가피한 평가방법이다. 선택형 문제는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 및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제의 부담은 매우 크다. 참인지 거짓인지 명확한 다수의 문장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참 또는 거짓 문장을 고르는 것이 선택형 문제인데 명확한 문장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대법원 판례에서 등장하는 문장을 그대로 제시하더라도 그 불명확성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 문장의 진위(眞僞)는 그 전제나 전체 취지 또는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 모두 선택형 시험에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문장도 볼 수 있다.

 

범죄를 지었더라도 심신장애인으로 판단하면 형벌을 줄 수 없다.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를 심신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심신장애가 있더라도 범행 당시 사물변별능력과 행위통제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면 심신장애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심신장애가 있더라도 범행 당시 사물변별능력이나 행위통제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인이 아니다”가 법원 공무원시험과 변호사시험에서 참으로 처리됐다. 그런데 이는 대법원 판례에서 발췌한 것으로서, 대법원 판례의 오류가 시험에 그대로 담긴 것이다. 수험생이 이런 오류를 따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암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의 주된 원인은 공무원시험의 선택형 문제가 대학의 법학교육과 연계되지 않은 채 판례의 문장을 그대로 베끼는 형태로 출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학교육은 큰 의미가 없고, 오히려 학원이 시험준비에 적합한 것이다. 대학의 교원이 출제의 중심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형 기출문제 중 오류는 없는지,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출제할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정성이 부족했다. 법학교육과 밀접하게 연계된 의미 있는 (형법) 선택형 문제를 만드는 데 (형)법학자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법학과 법실무의 의미 있는 내용만을 선택형 문제화함으로써 시험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 법학교육이 시험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태어나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즈음부터 시작된 조기교육에 이어 초·중·고의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 후 공무원시험도 학원에서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윤동호 국민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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