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이호선 칼럼] 대선 정국에서 국민투표 공약이 빠지면 안되는 이유 / 이호선(법학부) 교수

이 정권의 좌충우돌하는 입법 폭주는 적어도 2024년 총선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국민투표 활용 방안을 연구, 논의해야 한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4.7 보궐선거는 속절없이 낭떠러지 끝으로 돌진할 것 같던 대한민국이라는 버스를 간신히 그 앞에 멈춰 세웠다. 그러나 광란의 질주가 잠깐 멈추고 기사회생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지만 아직 멀었다. 이 정권의 좌충우돌하는 입법 폭주는 적어도 2024년 총선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면 권력의 속성상 지금의 거대 여당도 쪼개지거나 무모한 법안 강행 등에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오히려 곳곳에 심어 놓은 권력 기생 세력들, 법의 이름을 빌어 이미 매설해 둔 악법들을 통해 더 조직적으로 저항에 나설 수 있다. 사실 이들은 저항할 필요도 없다. 국회 권력 하나만 움켜쥐고 있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무력화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대하여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할 수는 있으나,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면 그 요구를 깔끔하게 무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우리 헌법이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라는 것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권교체 후에 이 극한의 ‘여소야대’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현실적인 전략을 짜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면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한다. 오매불망 정권교체를 염원하고, 또 그걸 준비하고 있다면, 그 새 날이 밝았을 때 닥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비책도 아울러 강구되어야 한다. 필자가 볼 때 새로운 대통령이 정권교체 후에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발목 잡을 여의도 권력에 맞서 쓸 수 있는 카드는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가 사실상 유일하다. 유일할 뿐 더러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고, ‘정당의 지배’라는 변칙이 ‘국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칙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국민투표에 대한 우려도 있다. 우선 국민투표가 집권자의 권력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는 국민투표를 신임투표(plebiscite)로 활용할 때 나오는 문제로서, 이미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하여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 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하여 우리 헌법상의 국민투표는 정책투표(referendum)의 성격만을 가질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바 있다. 이것은 새로운 대통령이 정책의 찬반을 국민투표에 붙여 설령 부결된다 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지고 그 직위에서 물러날 필요가 없거니와, 물러나서도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반인 입장에서 정책이나 법률이 국민투표로 결정되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과 국가적 에너지 낭비가 초래되고,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면 이런 염려는 기우임을 알 수 있다. 국민투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가부 또는 찬반을 묻지, 국민들이 어떠한 발안을 하도록 까지는 허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국한하여 국민 전체를 상대로 가부를 묻는데, 이 때 국민이 행사하는 권리란 ‘거부권’이고, 이 거부권 행사를 통해 드러난 소극적 동의를  현실 정치에 반영함으로써 제한적이나마 직접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다. 일찍이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소극적 동의권의 행사를 “총회는 행동이 아니라 중단을 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간명하게 표현한 바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정당의 대리인으로 전락하고, 정당이 노골적으로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통과된 법, 설령 그것이 여야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국민의 현실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통과시킨 가덕도 특별법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여기에 집권 민주당은 우리 헌정사에 일찍이 보지 못했던 뻔뻔함과 무도함으로 자파의 세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 생태계 확충을 목표로 특정 지지층,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특혜가 담긴 법률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다. 법 같지 않은 법률들이 대한민국을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진정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라도 헌법상의 국민투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미국의 상원이나 독일의 참사원 같이 입법부 내에서 특정 정파나 지역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지 못한 우리의 경우  국민투표는 헌법적 정당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고 유용한 제도이다.

 

국민투표를 대의 민주주의의 보완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위스, 폴란드 등과 같이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었어도 당연히 법률로서 발효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두어 시행하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이태리 같이 기왕에 시행되고 있는 법률들도 국민이 투표로 폐지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국가도 있다. 우리 헌법의 규정, 헌법재판소의 결정, 그리고 해외의 운용 사례를 감안할 때 헌법 제72조 상의 국민투표는 대선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이 바로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일 적기이다. 대선 국면에서 국민투표는 선거구도와 대선 주자들의 가치를 검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뿐 아니라, 공약으로 제시한 뒤에 국민투표에 부치게 되면 정치적 논란을 잠재우고 부담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미 법의 이름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독버섯 같은 악법들이 있는 이상, 이런 법들을 둔 채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집권 후 일정 기간 내에 헌법의 정신에 반하거나, 대한민국의 번영된 미래를 갉아먹는 암적인 법률들과 정책에 대하여는 임기 동안 시행하거나 집행하지 않겠다는 안을 내놓고 그에 대한 국민의 찬반을 물어 보겠다는 선언이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시즌 2가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 공감하는 대선 주자라면 적어도 내년 대선 후 3개월 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대통령이 국민투표부의권을 행사하여 기존의 악법・불량 정책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묻겠다는 정도는 공약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 더불어 민주당의 배설물을 그냥 놔두고 적당히 재포장해서 쓰자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국민투표에 부의할 대상과 범위가 대선 주자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어쨌건 이를 통해 국민은 누가 헌법정신과 미래에 대하여 가치에 기반 한 분명한 시각을 갖춘 지도자인지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국민이 직접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과단성과 결기가 있는 지도자라야 집권 후에도 정국 주도권을 잃지 않고 저 180여석의 무리와 제대로 일합을 겨룰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국민투표 활용 방안을 연구, 논의하고 국민 전체의 의사를 물어 볼 악법・불량 정책 목록들도 만들어야 한다. 이 정권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 적폐에 대하여 인적 청산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악법 청산의 청사진 정도는 제시될 수 있어야만 미래에 대한 나름의 그 어떤 비전 제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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