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홍성걸 칼럼] 이준석 리스크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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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알들 논다. 지려고 환장을 했구나." 대선을 70여 일 앞둔 시점에 국민의힘 선대위를 둘러싼 갈등을 바라보는 지지자들이 기가 막혀 하는 소리다. 불과 한 달 전, '윤핵관'(윤석열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이 자신을 패싱하고 선거를 망친다면서 백팩 하나 달랑 메고 사라졌던 이준석 대표가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또다시 같은 이유로 선거판을 뒤집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전당대회에서 30대 젊은 대표를 선택한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이준석이 좋아서, 그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알량한 기득권에 취해 전국 단위 선거에서 내리 3전 전패를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보수 야당에 마지막으로 대표라도 참신한 친구를 세워 바꿔 보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출된 이 대표가 대선을 100일 앞둔 시점에 잠적해 속을 썩이더니, 70일 앞에는 선대위의 모든 직책을 던지고 방송과 SNS를 통해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며 다닌다. 이런 정당과 후보에게 국민이 더 무슨 기대를 가질 수 있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새누리당 비대위원회의 청년 대표로 발탁된 이준석은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인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26세의 나이에 보수 야당 최고위원의 자격과 능력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자리에 가게 된 근본 이유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마이클 센델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이후 10년간 이준석은 주로 청년층을 대표해 미래통합당과 바른미래당의 최고위원을 역임하며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낙선하다가 처음 당선된 것이 바로 국민의힘 대표직이었다.
국민과 당원이 36세의 젊은 이준석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참신하고 젊은 정치인을 대표로 내세워 썩어빠진 국민의힘을 뿌리부터 바꾸어 정권교체를 이루라는 준엄한 명령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오히려 윤석열 후보의 지지세를 꺾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 대표는 윤핵관들이 대표인 자신을 패싱하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함으로써 오히려 윤 후보의 당선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신의 지금 행동은 윤 후보 당선을 위한 것이지 다른 뜻이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 비친 그의 행위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이 이번 대선의 주연이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대표는 장제원 의원을 윤핵관으로 지목했지만 윤핵관의 유무와 누가 윤핵관이고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조수진 의원의 항명은 잘못된 것이고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역대 대선 과정을 살펴보면 윤석열 선대위가 딱히 더 비대하고 문제가 많은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선대위는 항상 수천 명, 수만 명이 명함을 갖고 다닐 정도로 비대했고, 후보와 가까운 핵심 관계자들도 많았다. 선대위에서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일어나는 일은 다반사였지만, 대표라는 사람이 나서서 잠적하고 후보나 선대위 관계자를 비난한 적은 없었다.
비대한 선대위를 탓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선대위는 본래 항공모함 전단 같은 것이다. 항모 전단을 기민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것은 항모 자신이 빠르게 움직여서가 아니라 전단에 속한 호위함이나, 순양함, 구축함 등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은 항모 전단의 소통과 명령 체계이지, 항모 자체가 아니다.
이제 윤석열 후보의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더 이상 이 대표에게 끌려가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젊고 참신한 사람인 줄 알고 대표로 뽑았더니 이준석도 낡고 썩어 문드러진 기득권 정치세력의 일부였다. 현 선대위 체제를 수용하고 대표로서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겠다면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라. 이 대표도 지금처럼 자유롭게 비판하고자 한다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당에서도 떠나라. 손가락의 상처를 그대로 두어 팔을 잘라내도 고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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