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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멍거의 건축실험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건물에 창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창은 세 가지 기능이 있다. 실내에 빛을 들이는 일, 신선한 공기를 들이는 일 그리고 답답한 실내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일이다. 여러 개의 문을 열고 방을 거쳐 만나는 창은 공간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경이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이런 창을 없애는 실험이 진행된다.

 

미국 UC 샌타바버라대의 기숙사 건립계획이다. 11층 단일 건물에 무려 4500명을 수용하며 우리 돈으로 1조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 1인 1실을 원칙으로 8개의 방이 모인 한 단위에는 두 개의 욕실과 공용 거실을 둔다. 문제는 개인 침실에 창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에 기계식 환기장치와 가상 창문이 있어 시간에 따라 빛이 달라진다. 이 기숙사 설계를 제안한 이는 찰리 멍거다. 그는 올해 만 97세로 워런 버핏의 파트너로 유명한 억만장자다. 그가 2억 달러를 기부하면서 일종의 건축실험을 진행하는 모양새다.

 

창 없는 방에 대한 그의 생각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우선 이 거대한 기숙사가 역사적 선례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위니테 다비타시옹’ 프로젝트의 연장이며 그때의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거의 단위’라는 뜻의 이 프로젝트는 2차 대전 직후 대규모 주거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마르세유를 시작으로 네 군데 다른 도시에 더 지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밀도가 높으면서도 쾌적한 주거 환경을 이뤄내 현대 아파트 건물의 시초라 불릴 만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도 찬반이 격렬하게 부딪힌다. 비판은 주로 주변과의 조화나 도시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멍거가 말한 오류의 개선은 공동체와 소통의 문제인 듯하다. 그는 침실에 창이 없으면 룸메이트 간의 소통이 활발해진다고 주장한다. 침실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하고, 창이 있는 공유공간에서 대부분의 생활이 이뤄진다면 기숙사에 모여 사는 의미와 장점이 극대화된다는 논리다. 창의 기능은 대부분 최신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호화 유람선의 객실을 예로 들며 땅 위 건물에도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논쟁은 급기야 대학의 자문 건축가인 데니스 맥파든이 위원직을 사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그는 “건축가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 이 계획을 반대한다”라고 섬뜩한 사임의 변을 남겼다. 세계 유명 건축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멍거는 두 개 층이 전망 좋은 공유공간으로 설계됐고 피난이나 방재 등의 문제는 없을 것이며 건축가들이 항상 부정적 의견만을 낼 뿐 이 미래지향적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일축했다. 대학교 이사장은 건립계획에 대해 “감동적이며 혁신적이다”라고 말하며 지지와 추진 의지를 보였다.

 

멍거의 이상은 아마추어 건축가의 몽상으로 시작했지만, 그가 억만장자인 덕분에 곧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간단치 않은 건축적·도시적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 기숙사 계획은 창을 없애는 비인간적 공간보다는 창을 포기한 대가로 얻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실험이며 도시 공동 주거에 대한 극단적 대안으로 의미가 더 크다. 개인 공간을 희생하고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확보한 점, 그 결과로 도시 전체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한 측면은 새겨 볼 만하다. 특히 밀도를 높여 건물을 11층으로 낮춰 해결한 점은 베이, 즉 창의 개수를 늘리느라 무한정 층수 완화를 요구하는 우리 현실과 비교하면 참조할 만하다. 공유공간을 우선으로 계획하고 공동체를 배려하는 생각은 현대 도시건축의 이상이자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로 치면 고시원 같은 창 없는 주거실험의 미래는 불분명하다. 멍거의 바람대로 소통이 활발해지는 모범적 건물이 될 수 있을지 또는 반대 측 주장대로 모두가 외톨이가 돼 창도 없는 방에 갇히는 비싼 개미굴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영화에서 많이 본 듯도 하니 가까운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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