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메타버스와 도시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요란하지만 ‘메타버스(Metaverse)’는 모호하다. 현실과 상상적 관계에 주목한다면 예전에 유행했던 사이버 공간과 다르지 않다. 구현을 위한 기술적 해결과 구현 양상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혼합현실을 포괄하는 넓은 범위이다. 새로운 발견은 없다. 게임, 상거래, 관계망 등 사회 현상을 망라하기는 하지만 굳이 메타버스라는 생경한 단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세상을 뜻하는 verse인데 한글로 적을 때는 도로를 달리는 버스와 같아 더욱 헷갈리게 한다. 특정 회사의 상술이라는 음모론부터 다가오는 미래의 핵심적 개념이라는 벅찬 전망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가는 중이다. 메타버스 또한 공간을 의사소통의 기본 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이버 공간을 되돌아볼 때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사이버 공간은 1984년 윌리엄 깁슨의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이자 개념이다. 컴퓨터를 통해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라는 접두어는 조종·통제의 의미로 ‘인공의 공간’이라는 번역이 가장 가깝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자연 공간과는 다른 성격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도시 형태와 같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도시를 자연도 인공도 아닌 제삼의 유기적 조직으로 설명한 바 있다. 메타버스는 일종의 신도시인 셈이다.

 

사이버 공간이 대중의 시선을 끈 것은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였다. 때는 세기말이었고 인터넷의 효용에 환호하던 시절이었다. 닷컴 열풍이 말해주듯 기대는 과했고 성과는 빈약해 거품은 이내 꺼지고 말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사이버 공간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가 열릴 거라는 기대가 지나쳤다. 무궁한 가능성은 있었으나 그 한계는 인간의 인식과 상상력 안에 있었다. 사소한 디테일까지 주어지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을 새로이 만들고 고안해야 했다. 기대에 비해 기술이 따라오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둘째로 새로운 기술과 개념을 정신적으로 수용하는 인식상의 지체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술 외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논의가 있었지만 단시간 내에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용자들이 사이버 공간에 “왜 머무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도박 같은 중독성 강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한 번 방문은 해보지만 오래 머물게 할 수는 없었다. 메타버스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숙제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를 준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이지 않은 장소 즉 ‘비장소’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전통 시장이 아닌 대형마트, 마을 공동체가 아닌 대형 주거단지, 각종 디지털 매체로 뒤덮인 도시 공간 등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공항이나 기차역, 고속도로 같은 공간은 머물지 못하고 끝없이 움직이는 비장소의 특징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오제의 비장소 개념은 인간적 장소와 이를 회복하기 위한 반면교사로 의미가 뚜렷하다. 장소는 공간에 사람의 경험과 삶 그리고 애착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 이제까지 연구의 성과이다. 즉 도시는 인간의 경험과 기억을 담을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

 

사이버 공간이나 메타버스가 현실을 모방해 추상적 공간을 사람이 머무는 장소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에 우리 현실의 도시에서 장소가 비장소로 변해가는 것은 고약한 아이러니다.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도시 관련 공약은 없다. 부동산뿐이다. 도시 공간의 질이나 인간적 장소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비장소를 가속하는 아파트단지 세대수만 난무할 뿐이다. 가상의 메타버스가 아닌 진짜 도시에 사람들이 머물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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