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이호선 칼럼] 어느 꿈 이야기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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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대유하고 천화동인하세요"...나도 모르게 듣고 있다가 화가 나서 옆에 있던 소송 기록을 확 찢었는데, 꿈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국민 여러분, 닷새 후면 설날입니다.
코로나로 힘드신 국민 여러분, 모두 화천대유하고 천화동인하시는 임인년(壬寅年)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 동안 천화동인 주주들 중에서도 김만배(천화동인1호), 남욱(천화동인4호), 정영학(천화동인5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저희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사실 자존심이 좀 상했습니다.
이에 천화동인2호 주주인 김은옥, 천화동인3호 주주인 김명옥, 천화동인4호 주주인 남편 남욱과 주식을 나눠갖고 있는 정시내, 천화동인6호 주주인 조현성, 천화동인7호 주주인 배성준과 양재희가 국민 여러분께 세배 올립니다.
저희들에게 세뱃돈은 따로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가진 돈만 해도 충분하니까요. 또 저희에게 따로 “화천대유하고 천화동인하시라”는 덕담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언론과 이 쪽 분야 전문가들은 저 김은옥과 김명옥은 872만원 투자해서 각 101억원씩을, 조현성은 2천 442만원 투자로 282억원, 배성준은 1천 47만원 투자로 121억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뭐 대충 맞는 금액이지만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천 배의 수익이니, 천백배의 수익이니 말씀들 하시지만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앞으로 쭉 배당받을 금액이 더 남아 있거든요.
국민 여러분, 약 오르시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모르고 계셨던 사실 하나 말씀드릴까요? 더 복장 터지실 겁니다. 저 김은옥과 김명옥은 천화동인 만들 때 872만원 투자한 적이 없습니다. 조현성도 2천 442만원 투자한 적 없고, 배성준도 1천 47만원 낸 적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요. 네 맞습니다. 황당하지요.
천화동인 7개 회사는 2015. 6. 9. 모두 ㈜화천대유자산관리가 100% 출자하여 만들어진 화천대유의 자회사였습니다.
이 화천대유는 2015. 2. 6. 자본금 1천만원, 주식지분은 김만배의 동생 김석배가 100% 소유하는 회사로 출발했는데, 4개월 후에 7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자본금을 3억원 더 증자하였는데, 이 돈이 모두 천화동인 7개 자본금으로 재투자되었지요. 증자하면서 3억원에 해당하는 지분을 어떻게 나눴는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관할 세무서에는 주주명부가 있지만, 검찰 수사 대상이 되지 않는 한 세무서에서 알려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국민 여러분, 약 오르시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유리하면 국민의 알 권리 주장하고, 내게 불리하면 개인정보보호 핑계대고,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건 주식회사 천화동인1호부터 7호까지는 모두 한날, 한시에, 한 법무사에 의하여,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정관을 토대로 만들어진 화천대유의 자식 회사들이었습니다. 천화동인 7개사의 자본금을 모두 합하면 정확히 딱 떨어지는 증자된 3억원입니다.
872만원짜리 회사로 101억원을, 1,047만원짜리 회사로 121억원의 배당을 받고, 앞으로도 플러스 알파가 예정되어 있다면 그야말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개꿀이라는 말도 쓰더군요. 개꿀입니다.
사실 저희는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인 이 회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이 일곱 개 회사가 어떻게 둔갑을 하여 SK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성남의 뜰 주주 중 하나로 주주간 협약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변명같이 들리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잘 안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왜냐하면 성남의 뜰 콘소시움에 참여할 때 SK 금전신탁은 화천대유와는 별개의 주체인 것처럼 하여, 회사를 설립할 때 주주명부에 성남도시개발공사, 하나은행, 국민은행, 중소기업은행, 동양생명보험, 하나자산신탁, ㈜화천대유자산관리와 함께 에스케이증권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올렸는데, 지금 와서 화천대유의 100% 자회사였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몰랐다고 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자회견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먹었던 거 다 토해내고, 감옥 갈 수도 있는 위험을 누가 떠 안겠습니까. 토해내기는 하더라도 감옥까지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지금 천화동인의 주주가 되었냐구요. 글쎄 그러니까 그게 저희들도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사실 저희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천화동인 만들 때 저희 돈 한 푼도 출자하지 않았거든요. 화천대유를 만들어 주신 분이 천화동인도 만들고, 다 관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주주명부 상에서 화천대유가 사라지고 저희 이름이 올라와 있더군요. 적어도 2018. 6. 10. 기준으로는 양재희 빼고는 모두 천화동인 주주로 바뀌어 있더라구요.
아, 한 가지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천화동인1호 지분은 아직도 화천대유가 100% 갖고 있습니다. 기왕 말씀 드리는 김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기이하게도 천화동인에 많이 등장하는 숫자가 1,744입니다. 어디에 쓰이는 숫자냐구요. 김은옥, 김명옥 앞으로 각각 되어 있는 천화동인 2, 3호의 발행주식 총수, 즉 자본금입니다. 또 있습니다. 천화동인4호 단독 지분권자였던 남욱이 17,442 중에서 부인 정시내에게 나눠 준 주식 숫자도 공교롭게 1,744주입니다. 뭐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김은옥, 김명옥이 대장동 개발에서 주주로 참여하여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는 저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천화동인 하나씩을 차지하도록 배려 받았는지 설명이 안 되긴 합니다. 그렇다고 1,744주짜리 천화동인 3개가 누군가에게 후일 그 몫으로 넘겨줄 것을 예상하여 만들어 놓았다는 상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참 희한한 숫자 배분이라는 것뿐이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이쯤 되면 “화천대유하고 천화동인하시라”는 덕담이 왜 임인년 최고, 아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덕담인지 알겠지요. 저희는 눈꼽 만큼도 위험을 지지 않고, 태산 같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동안 그래도 872만원이라도 넣었으니 101억 벌었을 거라구 생각하셨겠지요. 로또 당첨이 부럽긴 하지만, 일단 로또 산 돈 만큼은 투자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셨지요. 천만에요. 미안하게도 저희는 로또 산 적도 없습니다. 누가 사서 당첨된 로또를 갖고 왔길래 그 로또 값만 주고 당첨금을 받아왔습니다. 그렇다고 그 당첨금의 진짜 임자가 누구인지, 그런 불순한 상상은 말아주세요.
그저 국민 여러분께 복을 빌어 드립니다.
“화천대유하고 천화동인하세요.”
나도 모르게 듣고 있다가 화가 나서 옆에 있던 소송 기록을 확 찢었는데, 꿈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변호사)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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